[2020.12.13] 첫눈
하노(hano)
첫눈이 내렸다. 2000년대 이후로 가장 늦은 첫눈이라고 한다. 기다림이 긴 만큼 반가움이 큰 법이다. 연말 약속도 모두 취소되고 집에서 하루를 보낸지도 이 주째, 눈 소식이 유난히 반갑다. 이제 눈밭에서 뛰어놀 나이도 지났건만 마음이 설렌다. 여자 친구가 아침에 이병률 산문집에 수록된 글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첫눈이 온다는 건, 그 첫눈을 밟으며 당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아름다운 가능성일 테니까.' 누군가 흰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11월 마지막 주에 마지막으로 만나고 만나지 못했다. 만나러 가고 싶었다. 글 속 당신처럼 눈을 밟으며 너에게 가고 싶었다. 얼굴이 보고 싶었고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이 지긋한 기다림에 싫증 났다. 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