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3] 첫눈
오늘도 어느 날

[2020.12.13] 첫눈

by 하노(hano)

 

첫눈이 온다는건, 아름다운 가능성일테니까.

 

 첫눈이 내렸다. 2000년대 이후로 가장 늦은 첫눈이라고 한다. 기다림이 긴 만큼 반가움이 큰 법이다. 연말 약속도 모두 취소되고 집에서 하루를 보낸지도 이 주째, 눈 소식이 유난히 반갑다. 이제 눈밭에서 뛰어놀 나이도 지났건만 마음이 설렌다. 여자 친구가 아침에 이병률 산문집에 수록된 글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첫눈이 온다는 건, 그 첫눈을 밟으며 당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아름다운 가능성일 테니까.'

 

 누군가 흰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11월 마지막 주에 마지막으로 만나고 만나지 못했다. 만나러 가고 싶었다. 글 속 당신처럼 눈을 밟으며 너에게 가고 싶었다. 얼굴이 보고 싶었고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이 지긋한 기다림에 싫증 났다. 어린 왕자의 여우는 어린 왕자가 네 시에 온다면 세 시부터 행복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은 온갖 불안한 마음이 모여드는 무저갱 같은 것이어서 나는 겁이 난다.

 

 "의식이 뭐야?"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너무 자주 잊혀지는 거야. 그건 어느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르게 만들고, 어느 한 시간을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거지.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의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목요일은 내게 있어 신나는 날이지! 난 포도밭까지 산보를 가고,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추면, 하루하루가 모두 똑같이 되어 버리잖아. 그럼 난 하루도 휴가가 없게 될 거고......" 
 여우가 말했다.

 

 우리 다시 만난 날을 위한 의식을 준비하자. 우리 만남은 사냥꾼들과 처녀들의 무도회보다 더 성대할 거야. 아주 특별한 하루를 만들자.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거라면 내가 한 발자국 너 나가 기다리릴게. 분명 그리움이 컸던 만큼 반가움도 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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