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리뷰 : 일상을 예술로 채워가는 법
오늘도 어느 날

<패터슨> 리뷰 : 일상을 예술로 채워가는 법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1. 줄거리
  2. 일상을 예술로 채워가는 법
  3. 시인

 

줄거리

 

  시놉시스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은 ‘패터슨’이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고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일상의 기록들을 틈틈이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출처 : 다음 영화)

 

  한 줄 요약

 

  8행으로 이루어진 일주일, 2시간

 

일상을 예술로 채워가는 법

 

 오랜만에 영화 리뷰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제일 재미있었거든요. 가장 시적인 영화 <패터슨>입니다. 

 미국 뉴저지주의 패터슨이라는 마을에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삽니다. 그는 매일 같은 경로를 따라 순환하는 버스 운전기사입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퇴근하고 나면 아내 로라와 반려견 마빈이 그를 반깁니다. 새로운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로라는 기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어떤 도전을 새로 할지 이야기합니다. 로라가 차려준 저녁밥을 먹고 패터슨은 마빈과 산책합니다. 산책길의 끝은 허름한 바입니다. 패터슨은 그곳에서 맥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아침 6시 10분에 기상합니다.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입니다. 그에게는 한 가지 취미가 있는데 바로 시 창작입니다. 항상 비밀 노트를 들고 다니며 어디서나 시를 씁니다.

 영화는 월요일 아침에서 시작하여 다음 월요일 아침으로 끝납니다.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비슷한 구성으로 보여주죠. 시지프스가 매일 바위를 산꼭대기 위에 올려도 듯 반복되는 구성이 이어집니다. 월요일의 시작과 화요일의 시작이 같고 월요일의 끝과 수요일이 끝이 같습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기시감에 시달립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성입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면 패터슨이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매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일상이 이어집니다. 카뮈는 모든 인간은 시지프스의 형벌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습니다.

 짐 자무쉬 감독은 유쾌한 방식으로 이 부조리를 표현합니다. 영화의 시작, 월요일 아침에 로라는 패터슨에게 자신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쌍둥이를 낳아 기르는 꿈이었습니다. 꿈 이야기를 듣고 출근하는 길에 패터슨은 쌍둥이 노인을 발견합니다. 이후로도 영화에는 쌍둥이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우리 일상이 마치 쌍둥이 같다는 비유입니다. 겉보기에는 매우 비슷하지만 그 내면은 다른 쌍둥이처럼 일상은 매일 비슷한 날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조금씩 다릅니다.

 패터슨의 직업 역시 반복되는 일상을 상징합니다. 그는 매일 같은 경로를 정해진 시간에 순환하는 버스 기사입니다. 그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이 그의 이름과 같은 패터슨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도시 자체가 그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삶은 매일 반복되는 순환 노선 지하철 같은 것이겠네요.

 이 부조리함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패터슨은 예술을 선택합니다. 시 창작을 하며 그는 모든 일에 감탄하고 감화합니다. 집에 있던 성냥에서 창작을 시작하기도 하며 바에서 마시던 맥주병에서 시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 순간 감탄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지루할 틈이 없겠네요. 매번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 순간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패터슨>에는 일상을 예술로 채워가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세탁소에서 랩을 하는 래퍼, 패터슨처럼 비밀 공책을 갖고 시를 쓰는 어린 소녀와 월리엄 카를로스 월리엄스의 고향을 찾아온 일본인 시인. 이들은 당당히 자신이 시인이며 래퍼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예술의 세계에 발 들이기만 한다면 그 순간부터 예술가입니다.

 예술은 삶으로 들어옵니다. 월요일의 마지막 순간 패터슨은 바에서 맥주잔을 바라봅니다. 이 장면이 하이앵글로 촬영되어 부감 샷으로 보이다가 페이드 아웃하고 화요일 아침으로 전환됩니다. 화요일에 그는 맥주를 보고 떠오른 시를 적습니다.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다시 바에서 맥주잔을 똑같은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이미 시로 쓴 장면을 반복하는 것은 이제 역으로 시가 일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술은 점차 일상으로 침투합니다. 마치 갈수록 로라의 흑백의 페인트로 변해가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의 구조 자체도 시적입니다. 영화가 시적이라면  평을 듣는다면, 그 영화는 모 아니면 도입니다. 시는 함축의 문학입니다. 영화는 문학에 비유하면  단편소설에 해당합니다. 풀어서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상징과 은유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야기 속, 즉 서사 속에서 작동하는 서사 장르입니다. 때문에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나오는 것이죠. 200쪽이 넘는 한 편의 시가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과연 그 시를 읽을 수 있을까요? 2시간짜리 영화를 시처럼 만들겠다는 건 200쪽이 넘는 시를 쓰겠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만들기는 어렵지만 재미있기는 더 어렵죠.

 시의 구조는 행과 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부터 배우는 내용이죠. 각 행은 비슷한 분량과 구성으로 음률을 만듭니다. 시인은 비슷한 어조를 구사하고 비슷한 음가를 지닌 낱말을 사용합니다. 행은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독자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이를 행간에 변주가 있다고 합니다.

 변주란 반복과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것이 반복지만 이전의 것과는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을 변주라고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이 변주의 연속입니다. 매일 비슷한 날들이 반복되지만 분명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영화는 이 변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매일 6시 10분에 카시오 시계를 보고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며 같은 풍경을 보며 버스 운행을 합니다. 하루의 마무리는 매일 마빈을 산책시키고 바에서 맥주 마시는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 구조가 반복됩니다. 마치 각 요일이 행으로 이루어진 8행의 구조의 시 같습니다.

 

시인

 

 지금부터 스포일러성이 매우 짙은 이야기를 다룰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은 일요일에 발생하는 패터슨의 비밀 노트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일입니다. 그 순간에도 배우의 연기는 매우 정적입니다. 정성과 시간이 담긴 노트를 찢어버린 마빈에 대한 원망도 매우 절제되어 표현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인내하는 패터슨의 심리상태를 배우가 표현하지 않고 관객이 상상해 보록 만듭니다. 절망에 빠진 시인은 암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할까요?

 그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혼자 산책합니다. 동네에 있는 폭포를 보러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한 동양인을 만납니다. 예의 바른 동양인은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그에게 옆에 앉아도 되는지 허락을 구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는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아느냐고 묻고 패터슨도 시인인지 묻습니다. 패터슨은 자신은 시인이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지금껏 쓴 시가 모두 사라졌는데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패터슨은 자신은 그냥 버스 기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동양인 남자는 매우 시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순간 관객들은 시를 쓰지 않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의사였다는 것을 들은 동양인이 "아하!"라고 소리친 것처럼 패터슨도 관객도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속으로 "아하!" 감탄사를 외쳤을 것입니다. 동양인 남자는 떠나면서 패터슨에게 빈 공책을 선물합니다. 패터슨은 선물 받은 공책을 펼치고 폭포를 바라봅니다. 그 장면을 둘리 줌을 사용해 긴장감 있게 표현합니다. 118분의 러닝타임 중 가장 몰입도 높은 장면입니다. 이내  패터슨은 공책에 새로운 시를 적기 시작합니다.

 패터슨은 다시 시를 적기 시작하겠죠. 내일 월요일이 찾아오면 6시 10분에 일어나고 버스를 운행하는 일상이 다시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난 시들은 사라졌어도 계속 반복되며 계속 이어질 일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일 버스 운행하기 전에 찾아오는 동료 도니의 토로에도 패터슨은 별다른 위로를 하지 않습니다. 짧은 공감만을 보냅니다. 내일도 같은 고민이 이어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도니도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금요일에는 말해 뭐하냐는 듯 "모르는 게 나아"라고 말합니다. 말하더라도 어차피 똑같은 고민이 계속될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패터슨과 에버렛의 대화처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입니다.

 약 이 주일 만에 영화 리뷰를 써봤는데 어땠나요? 즐겁게 읽으셨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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