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중주> 리뷰 - 이건 다 베토벤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느 날

<마지막 4중주> 리뷰 - 이건 다 베토벤 때문입니다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1. 줄거리
  2. 연주의 시작
  3. 연주의 끝, 다시 시작

 

줄거리

 

  시놉시스

 

인생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불협화음

결성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세계적인 현악4중주단 ‘푸가’. 그들 내에서 음악적,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던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네 명의 단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스승과 제자, 부부, 옛 연인, 친구 등 개인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관계인 네 사람은 이를 계기로 25년간 숨기고 억눌러온 감정들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삶과 음악에 있어서 최대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한편, 본인의 병으로 인해 ‘푸가’ 4중주단이 위태로워질 것을 깊이 염려하던 피터는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할 것을 제안하는데…

(출처 : 다음 영화)

 

  한 줄 요약

 

 25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공연하던 전설적인 현악 4중주단 푸가는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전에 없던 갈등에 빠진다. 하지만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세한 줄거리

(분량이 길지만 리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넘어가고 싶은 분들은 위의 목차를 클릭해주세요.)

 막이 열리고 연주자 4명이 무대에 오른다. 첼리스트 피터 미첼, 제1 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 러너, 제2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로버트, 비올라 연주자 줄리엣 로버트는 서로 불안한 듯 눈을 마주친다. 공연장은 '고요' 그 자체다.

 네 사람이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피터는 강의실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 중이다. 학생 중에는 로버트와 줄리엣의 딸 알렉산드라도 있었다. 피터는 TS. 엘리엇의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에 대한 시를 낭독한 뒤에 곡에 대해 설명한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모두,
미래의 시간 속에 있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들어있다
모든 시간이 영원히 현재라면
시간은 돌이킬 수 없는 것
혹은 끝이 시작을 앞선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끝과 시작은 늘 그곳에 있었고
시작의 이전과 끝의 이후엔
늘 현재가 있다

 네 사람은 피터의 집에 모여서 샴페인을 들고 자축한다. 샴페인을 마신 네 사람은 합주 연습을 한다. 연주를 하기 전에 대화를 나누는데 로버트와 줄리엣의 딸 알렉산드라를 제1바이올리니스트 대니얼에게 레슨을 맡기기로 한다. 대화를 마치고 연주를 시작하는 네 사람. 그런데 피터가 계속 실수한다. 완벽주의자인 대니얼은 피터를 지적한다. 피터는 컨디션이 안 좋다며 다음에 다시 합을 맞춰보자고 한다.

 다음 날, 병원을 찾은 피터는 파킨슨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대니얼은 알렉산드라를 만나 연주를 들어보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니얼은 알렉산드라보고 베토벤 전기부터 다시 읽어 보라 하고 알렉산드라는 황당해한다. 한편, 로버트는 집에서 아내 줄리엣을 깨우고 조깅을 나왔다. 조깅하는 길에 간혹 마주치는 라틴 댄서와 대화를 나눈다. 로버트는 그녀에게 가끔 음악을 추천해주곤 했다. 그녀는 로버트에게 이번에는 어느 부분을 연주하냐고 묻자 로버트는 언제나 그렇듯 제2바이올린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그녀는 로버트에게 솔로 파트 연주를 해보고 싶진 않으냐고 묻는다.

 네 사람은 다시 피터의 집에 모였다. 다과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피터가 파킨슨 병에 걸렸음을 알린다. 사실상 은퇴 선언을 하며 자신의 후임으로 니나 리를 추천한다. 줄리엣은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대화를 회피한다. 피터의 집을 떠나는 로버트, 줄리엣, 대니얼은 길을 걷는다. 한겨울이다. 로버트는 조심스럽게 피터가 '푸가'를 떠난 뒤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과 대니얼이 제1바이올린을 5:5로 나누어 연주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줄리엣은 지금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먼저 떠나고 대니얼도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며 비꼰다.

 다음날 로버트는 알렉산드리아가 이삿짐 옮기는 것을 돕는다. 알렉산드리아는 4중주의 분위기를 듣고는 엄마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대니얼은 감정이 메말랐다고 말한다. 로버트와 알렉산드리아가 짐을 옮기는 동안 줄리엣과 로버트는 비밀리에 따로 센트럴파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어젯밤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줄리엣은 피터가 사중주를 떠난다면 자신도 더 이상 사중주를 계속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토로한다.

 피터는 파킨슨병 재활 훈련을 하고 대니얼은 알렉산드라의 레슨을 계속한다. 네 사람은 저녁에 다시 모여서 과거에 그들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추억을 회상한다. 돌아가는 길, 택시 안에서 줄

리엣은 로버트에게 제1바이올린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팀의 조화를 위해 항상 인내하고 욕심을 억제하던 로버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로버트는 조깅 친구가 일하는 술집에 가서 술을 진탕 마신다. 그날 밤 로버트는 라틴 댄서와 잠자리를 가진다.

 다음 날 아침, 소파에서 자고 있던 로버트를 줄리엣이 깨운다. 로버트는 일어나서 샤워를 한다. 샤워하는 동안 로버트에게 문자가 온다. 줄리엣은 문자를 보고는 표정이 굳더니 로버트에게 바이올린이을 어디에 두었냐고 묻는다. 로버트는 실수로 바이올린을 라틴 댄서의 집에 두고 왔다. 로버트는 급히 라틴 댄서와 만났다. 댄서는 로버트에게 감정에 솔직해지라고 말하지만 로버트는 거절한다. 그 순간 로버트 뒤를 밟은 줄리엣이 나타나고, 로버트의 외도는 발각된다.

 한바탕 부부 싸움을 하고 줄리엣은 피터를 찾아왔다. 마침 니나 리에게서 '푸가'에 합류하겠다는 승낙 연락을 받은 피터는 줄리엣에게 그 소식을 전한다. 감정이 복잡했던 줄리엣은 눈물을 흘리고 피터가 없는 '푸가'는 상상할 수도 없다며 약한 마음을 보인다. 피터는 줄리엣에게 두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줄리엣과 로버트는 알렉산드라에게 새로운 바이올린을 사주기 위해 경매장에 찾아왔다. 두 사람은 좋은 바이올린을 발견한다. 로버트는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경매에 통 집중하지 않는 로버트를 대신해 경매에 나섰지만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고액을 부르면서 줄리엣은 경매를 포기하고 경매장을 떠난다. 경매사는 세 번 입찰가를 호가하고 낙찰을 선언한다. 로버트는 줄리엣을 따라나선다. 줄리엣은 로버트에게 25년간 함께 했지만 당신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마음을 자기도 모르겠다고 말하고는 떠나간다.

 대니얼은 로버트를 만난다. 로버트는 혼자서 술에 취해 있었다. 대니얼은 결혼 생활과 4중주를 모두 망칠 셈이냐며 나무란다. 대니얼은 논리적으로 로버트를 설득하려 하지만 분노가 한계치에 달해있던 로버트는 팀이 너의 연주 방식에 끌려가는 것도 너의 뒷바라지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다며 화를 낸다. 대니얼은 어처구니없어하며 자리를 떠난다.

 대니얼은 알렉산드라의 아파트로 향했다. 알렉산드라와 대니얼이 사랑을 나누던 중에 누군가가 알렉산드리아의 벨을 누른다. 줄리엣이었다. 아파트 비상구를 통해 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대니얼. 하지만 1층에서 기다리던 줄리엣은 대니얼의 자동차를 발견한다. 줄리엣은 알렉산드라 집으로 올라와 부부간에 있었던 일을 알린다. 알렉산드라는 이미 주말 간에 로버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줄리엣은 바람피운 로버트를 둔 둔하고 도리어 줄리엣을 비난한다. 줄리엣은 대니얼의 차를 봤다며 반격한다. 알렉산드라는 줄리엣이 얼마나 형편없는 엄마였는지 이야기하며 차라리 낳지 않는 게 좋았을 거라는 말을 해 줄리엣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피터의 강의 시간, 알렉산드라는 대니얼처럼 실수하는 동료에게 거친 언행을 퍼붓는다. 피터는 진정시키며 과거 자신이 어린 연주자였던 시절에 스페인의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를 만났던 일화를 말해준다. 피터는 실수에 연연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하며 그때 카잘스 앞에서 한 연주를 보여준다. 연주를 완벽히 해낸 피터는 컨디션이 돌아왔음을 느끼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4중주 구성원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푸가 팀은 다시 피터 집에 모였다. 네 사람은 합을 맞춰본다. 피터를 제외한 세 사람은 갈등이 쌓일 대로 쌓인 상황에서 사소한 신경전이 이어지더니 로버트가 알렉산드라와 대니얼의 관계를 알게 되고 크게 분노한다. 로버트는 대니얼의 얼굴에 주먹을 갈기고 피터의 집을 떠나간다. 줄리엣은 로버트의 뒤를 따라간다. 대니얼은 피터의 방에 따라 들어간다. 피터는 알렉산드라와 관계를 정리하라고 하지만 피터는 거절한다. 피터는 25년간 배운 것이 없다며 힐난한다.

  알렉산드라는 대니얼의 집에서 푸가 팀의 과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줄리엣의 인터뷰 장면이었다. 대니얼이 집에 들어오고 알렉산드라는 힘겹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대니얼이 왜 그러냐고 묻자 줄리엣은 '푸가'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니얼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둘이서 새로운 4중주를 만들자고 말한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이미 마음을 결정한 뒤였다.

 푸가의 25주년 공연 당일 날, 네 사람은 무대에 오르고 평소처럼 연주를 진행한다. 연주가 한참 계속 이어진다. 중간에 피터의 손가락이 말이 듣지 않는지 멈칫거리다가 끝내 연주를 멈춘다. 나머지 세 사람도 차례로 연주를 멈춘다. 피터는 의자에서 일어나 관객석을 향해 사과의 말을 전한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여기서 멈춰야겠습니다. 동료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군요. 이건 현악4중주 14번을 끊임없이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한 베토벤 탓입니다."

 피터는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온다. 피터를 대신할 연주자 니나 리가 무대에 오르고 푸가는 연주를 재개할 준비를 한다. 대니얼은 악보를 닫고는 로버트를 바라본다. 로버트와 줄리엣도 따라서 악보를 덮는다. 푸가의 연주가 시작되고 영화는 음악을 지속하면서 끝난다.

 

연주의 시작

 

 <걸어도 걸어도>가 인생은 계속되어 반복되는 것임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현실과 마주해야 함을 말해주었다면 <마지막 4중주>는 인생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말해줍니다. 출연진의 면면들이 대단합니다. 영화를 어느 정도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주연 배우들이 익숙하실 겁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도 보이는군요. 흔치 않은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였습니다. 저예산 영화에서 어떻게 이 네 사람을 모았는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영화는 충분한 가치를 가졌습니다.

 <마지막 4중주>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 오프닝의 교과서 같습니다. 미장센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네 사람의 성격과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암시합니다. 오프닝이 갖추어야 할 것들을 모두 갖춘 훌륭한 오프닝입니다. 피터의 '4개의 4중주' 낭독을 배경 삼아서 네 사람의 일상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대니얼의 첫 등장은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의 악보에는 수 없이 많은 메모가 적혀있습니다.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자적인 대니얼의 성격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로버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푸가의 해외 일정을 조정합니다. 로버트가 푸가의 살림살이를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크고 투박한 글씨로 도시 이름만 적어놓는 것으로 보아 대니얼과는 성격이 정반대인 것 같습니다. 줄리엣은 비어있는 피터의 집에 꽃이 든 화분을 들고 찾아갑니다. 화분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는 연주 연습 준비를 하는군요. 피터와 푸가는 그녀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피터는 영화 내내 모두의 스승 역할을 합니다.

 네 사람의 관계는 다음 장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샴페인 좋아하시나요? 샴페인은 온도가 올라가면 맛이 변하기 때문에 잔의 다리를 잡습니다. 샴페인 잔의 다리가 긴 이유가 체온으로 음료의 맛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피터의 집에서 네 사람이 샴페인을 마시며 자축하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피터와 로버트는 잔의 머리 부분을 대니얼과 줄리엣은 다리를 잡고 있습니다. 철저히 악보를 따라가고자 하며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두 사람은 정석대로 다리를 감성과 조화를 중시하는 피터와 로버트는 머리를 잡고 있네요.

 푸가라는 팀 이름도 의미심장합니다. 푸가(Fuga)는 작곡기법의 한 종류라고 합니다. 보통 음악에는 주선율이 있고 그를 받쳐주는 반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푸가는 두 개 이상의 선율이 서로 다른 소리를 결합하는 방식의 작곡 방식입니다. 모두의 스승이자 반주자인 첼리스트 피터의 소리가 약해지자 푸가 구성원들은 각자의 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불협화음을 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감독은 영화 시작부터 지금부터 관객들에게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첫 장면이 콘서트장에서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이라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나죠. 그런 뒤 피터의 말을 통해서 연주할 음악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이라는 곡을 연주할 거고 이 곡은 어떤 곡인지에 대해 말이죠.

"이 작품은 총 7악장인데 각 악장이 연결되어 있어서 중간에 쉬어서는 안 되지. 포즈도 튜닝도 안 돼. 베토벤은 각 악장 끝에 쉼없이 연주하라고 명시했어. ...(중략)...  연주자에겐 이렇게 오래 쉼 없이 연주한다는 건, 각 악기들의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야.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출까? 혹은 모두가 불협화음이어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정답은 나도 몰라.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영화는 현악4중주 14번처럼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내며 흘러갑니다. 쉴 틈도 없이 말이죠. <마지막 4중주>는 영화의 방식으로 베토벤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한 것입니다.

 

연주의 끝, 다시 시작

 

 이번에는 오프닝의 네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로버트는 딸과 자주 대화를 나누며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아내에게 커피를 타 주고 조심스럽게 깨우는 가정적이고 다정한 남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제1바이올린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아내에 대한 불안감, 대니얼에 대한 불만, 열등의식이 잠들어 있었군요. 조심스럽게 이번에는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것이 어떻냐고 묻습니다. 피터는 동의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에 의해 묵살됩니다. 정확히는 로버트가 양보했습니다. 로버트는 25년간 양보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욕심보다 팀의 조화를 선택해왔습니다. 하지만 줄리엣과 옛 연인 관계였던 다니엘에게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로버트는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줄리엣은 다소 가정에 무관심해 보입니다. 남편이 사랑스럽게 커피 향으로 깨우는데 귀찮아합니다. 로버트가 언제 딸과 대화를 했는지도 모르고 딸이 독립하는 날 이사하는 데 와보지도 않습니다. 그때 그녀는 대니얼을 만나 푸가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푸가, 현재 모습 그대로의 푸가입니다. 그녀는 팀의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편보다는 보수적 성향인 대니얼의 편을 듭니다. 그녀는 팀의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딸에게 온갖 비난을 당했습니다. 알렉산드라가 바람피운 아버지의 편을 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자식은 생각보다 정확하게 부모를 판단합니다.

 원칙주의자인 대니얼은 은근히 로버트를 무시합니다. 감정에 충실하여 연주하는 것이 위험을 감수할만하다고 말하자 '위험? 음악이 도박이야?'라고 비웃습니다. 대니얼은 항상 이성적입니다. 팀 내에서 가장 이성적이던 그가 원칙을 어기고 동료의 딸과 사랑에 빠집니다. 이성을 벗겨내자 논리로 포장해온 그의 진심이 드러납니다. 로버트는 우리는 너의 소유물에 불과했다고 말하지만 대니얼은 자신은 그렇게 여긴 적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가 푸가 때문에 헤어지자고 말하자 그깟 4중주 때문에 그러냐면서 남들을 위해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새 팀을 꾸리면 된다고 말합니다. 로버트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는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었습니다. 피터가 그에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건 이런 의미였군요.

 피터는 로버트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해줍니다. 강의 중에 동료의 실수를 지적하는 알렉산드라에게 실수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피터의 성향은 대니얼보다는 로버트와 더 가까운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피터는 줄리엣에게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대니얼에게는 감정에 대한 충실함과 양보하는 삶에 대해 알려줍니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즈가 허수아비와 사자, 양철 나무꾼에게 지혜, 용기, 심장을 준 것처럼 피터는 동료이자 제자인 세 사람에게 삶의 지혜를 남겨주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여기서 멈춰야겠습니다. 동료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군요. 이건 현약4중주 14번을 끊임없이 연주해야 한다고 주장한 베토벤 탓입니다."

"이 작품은 총 7악장인데 각 악장이 연결되어 있어서 중간에 쉬어서는 안 되지. 포즈도 튜닝도 안 돼. 베토벤은 각 악장 끝에 쉼 없이 연주하라고 명시했어. ...(중략)...  연주자에겐 이렇게 오래 쉼 없이 연주한다는 건, 각 악기들의 음률이 맞지 않게 된다는 의미야.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출까? 혹은 모두가 불협화음이어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 정답은 나도 몰라.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결국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던 피터는 베토벤의 탓으로 돌립니다. 쉼 없이 연주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현약4중주 14번처럼 튜닝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흘러갑니다. 놓치면 그걸로 끝입니다. 아무리 불협화음을 내더라도 붙들고 끝까지 연주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피터는 빠르게 흘러가는 인생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감독은 인생은 불협화음을 내면서 쉴새 없이 흘러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피터는 청년 시절에 파블로 카잘스에게 '실수나 새는 것은 머저리들에게 맡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을 보고 단 한 소절이라도 아름답고 훌륭하다면 우리는 연주자에게 감사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인생이 쉼 없이 흘러가도록 강요하더라도 우리는 카잘스처럼 아름다운 단 한 소절을 찾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파블로 카잘스의 명언을 끝으로 포스팅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 기자가 95살에도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를 묻자 한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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