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리뷰 - 현생을 사십시오
오늘도 어느 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리뷰 - 현생을 사십시오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1. 줄거리
  2. 현실이 상상을 넘어서는 순간
  3.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줄거리

  시놉시스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상상’을 통해 특별한 순간을 꿈꾸는 그에게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오는 미션이 생긴다. 평생 국내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월터는 문제의 사진을 찾아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평소 자신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누구보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월터,
그 누구도 겪은 적 없는 특별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한 줄 요약

 

 폐간을 앞둔 잡지 회사에 근무하는 월터가 폐간지의 표지 사진을 잃어버리고 그 사진을 찾아 나서서 여행을 떠난 끝에 사진을 찾아내는 이야기.

 

  자세한 줄거리

(분량이 깁니다. 넘어가고 싶은 분들은 위의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 목차로 이동합니다)

 

 월터 미티는 라이프 잡지사에서 필름 사진 현상 담당가로 16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만남 주선 사이트 e-하모니에 등록된 한 여성의 프로필을 보고 윙크(호감 표시)를 보낼지 말지 고민한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얼마 전 라이프 지에 취직한 여직원 셰릴 멜호프였다. 용기 내어 소심하게 윙크를 클릭해보지만 오류가 발생해서 윙크가 전송이 안 되었다. 계속해서 눌러보지만 출근시간이 늦어 월터는 집을 나선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월터는 사이트 고객센터에 전화한다. 상담원 토드 마허가 전화를 받았다. 월터 프로필에 가본 곳 해본 것 란이 공란이어서 윙크가 안 보내졌다고 답하고 월터에게 해본 일이나 가본 곳 중에 특별한 일이 없었는지 묻는다. 월터는 특별한 일을 겪어 본 적은 없다고 대답한다. 월터는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갑자기 플랫폼에서 뛰어내려 건너편 건물 유리창을 뚫고 들어간다. 월터가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개 한 마리를 구출하고 나오자 갑자기 건물이 폭발했다. 개의 주인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은 셰릴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토드의 목소리가 들리고 월터는 정신을 차린다. 이 모든 것이 월터의 상상이었다.

 회사 건물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주말 사이 회사가 인수되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말이 돌았다. 월터가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침 뒤에 구조조정 담당자인 테드 헨드릭스가 서 있었다. 어머니가 생일 케이크로 만들어주신 귤 케이크를 회사에 찾아와 전해준 동생 덕에 월터는 테드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게 된다. 테드는 종종 상상에 빠지곤 하는 월터를 '우주비행사 톰'이라며 놀린다. 파견된 구조조정 담당자는 직원들을 모두 모은 뒤에 Life 지는 잡지 출간을 멈추고 온라인 잡지만 제작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구조 조정될 것이라는 발표를 한다. 또 숀 오코넬이라는 유명한 사진가가 꼭 25번 사진을 표지에 실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도 전한다.

 월터는 자신의 근무지인 원판 관리실에 간다. 그곳에서 숀 오코넬이 보낸 필름과 그가 보낸 선물을 받는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숀 오코넬이 Life지의 모토가 새겨진 지갑을 남기고 갔다. 하지만 정작 숀 오코넬의 25번째 필름은 없었다.

 그린란드

 월터는 난처해졌다. 숀 오코넬은 주소지는 명확하지 않은 방랑 생활을 하며 요즘 세상에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아서 편지를 전보로 보내는 기인이었던 탓에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월터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단서인 숀 오코넬이 25번 사진과 함께 보낸 사진들을 확대해 보면서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사진과 셰릴의 도움으로 월터는 숀이 그린란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월터는 난생처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린란드에 도착해서 숀 오코넬이 고료를 수령해간 장소로 갔다. 한 허름한 술집이었다. 그곳에서 숀의 행방을 묻는 사이에 술에 잔뜩 취한 거구의 남성이 월터에게 시비를 걸었다. 뻣뻣한 월터의 태도에 화가 난 남성과 월터 간에 몸 다툼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월터는 남성의 엄지손가락을 보고 남성이 숀 오코넬 사진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거구의 남자는 헬리콥터 조정사였다. 숀이 남자의 헬기에 탔을 때 사진을 찍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지금부터 숀이 타고 있는 배에 무전기 부품을 전달하러 갈 참이었는데 함께 가겠냐고 묻는다. 술에 쩔어 인사불성이 된 남자를 보고는 월터는 헬리콥터에 타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마음대로 하라며 헬기로 향한다. 남자가 헬기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자 술집에서 노랫소리를 듣는다. 어디선가 나타난 셰릴이 기타를 치며 '스페이스 오디티'(우주비행사 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 음악을 듣고서 용기를 얻은 월터는 이륙하는 헬기에 뛰어든다.

  헬기에 탄 월터는 망망대해 한복판에 떠 있는 배 근처로 도착한다. 배에서는 무전기 부품을 받기 위해 고무보트 하나를 바다에 띄웠다. 조종사는 부품을 들고 배로 뛰어들라고 한다. 월터는 이해를 잘 못해서 고무보트가 아닌 본선 방향으로 뛰어들었다가 바다에 빠졌다. 고무보트가 월터를 구출하기 위해 다가가는데, 월터의 주변으로 지느러미가 불쑥 나타났다. 상어가 나타나서 월터에게 아가리를 열고 덤벼들었다. 월터는 가까스로 고무보트에 구조되어 본선에 타게 되었다.

 배에 올라탄 월터는 선장에게 숀의 행방을 묻지만 숀은 이미 배를 떠나 아이슬란드에 간 뒤였다. 월터는 선장에게 무전은 할 수 없냐고 묻지만 월터가 바다에 빠졌을 때 무전기 부품을 빠뜨려버려서 무전기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드의 팬이라는 한 선원이 월터에게 살갑게 대하며 케이크를 전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것과 똑같은 귤 케이크였다. 케이크를 싼 종이에 적힌 글자를 보고 월터는 숀의 촬영 계획을 알게 되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배에서 월터는 무작정 숀이 촬영하기로 계획한 화산으로 향한다. 화산으로 가던 중에 월터는 한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 주차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서 롱보드를 얻는다. 그 뒤로 호텔에 들어가서 호텔 주인에게 숀의 정보를 얻는다. 숀이 있다는 옆 마을로 향하는 월터에게 주인이 흥분에서 뭐라 뭐라 소리치지만 월터는 알아듣지 못한다. 월터는 보드를 타고서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마을 전체에 사이렌 소리가 울리는데, 호텔 주인이 차를 타고 나타나서 소리 질렀다. 화산이 곧 폭발한다는 이야기였다. 곧이어서 정말 화산이 크게 폭발하고 검은 화산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놀란 월터가 산을 바라보는데 경비행기 날개 위에 올라탄 숀이 화산으로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월터는 주인의 차를 얻어 타고 가까스로 화산재에서 벗어났다.

입국

 월터는 파파존스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셰릴의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나눈다. 통화를 마치고서 후배의 문자를 확인하는데, 월터가 당장 돌아오지 않는다면 후배를 해고시키겠다는 엄포를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월터는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새로운 상사에게 25번째 사진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월터는 그 자리에서 해고당한다. 월터는 롱보드를 셰릴의 아들에게 주기 위해서 롱보드를 가지고 셰릴의 집으로 간다. 셰릴의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셰릴의 전남편이었다. 실망한 월터는 셰릴이 나타나기 전에 롱보드를 현관에 두고서 떠나간다.

 월터는 그린란드로 떠나기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해주었던 피아노를 보관하기 위해 무리해서 어머니에게 평수가 넓은 멘션으로 이사시켜주었다. 집에 돌아가 보니, 이사 갈 집이 비기까지 월터와 지내게 된 어머니와 어머니의 짐이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월터는 숀이 선물해준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소파에 앉아서 사진을 보던 월터는 마지막 단서인 사진이 어머니의 피아노 사진임을 알아챈다. 숀은 어머니에게서 숀의 목적지와 숀이 일주일 전쯤에 귤 케이크를 얻어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

 월터는 다시 여행을 떠난다. 월터는 셰르파 두 사람을 대동하고 산행에 오른다. 월터는 숀이 그랬던 것처럼 민병대장에게 귤 케이크를 뇌물로 넘기고 무사히 통과해 넘어간다.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선물해주셨던 여행일지 노트에 글을 적으며 대자연 속을 통과하던 끝에 월터는 셰르파들과 헤어지고 혼자 남겨진다.

 혼자 남겨진 월터에게 토드에게 전화를 받고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전화를 나누며 산을 오르던 월터에게 누군가가 조용히 하라고 속삭이듯 말한다. 뒤돌아서 확인해보니 카메라를 든 숀 오코넬이었다. 월터는 자신이 월터 미티라고 소개하고 25번 사진의 행방을 묻는다. 숀은 그 사진은 선물한 지갑 속에 들어있었다고 대답한다. 월터는 허무하기도 하고 지갑을 버렸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기도 하다. 

 재입국

 월터는 LA 공항에 내렸다. 월터는 여행금지 국가에서 왔다는 사실 때문에 공항에 구금된다. 경찰이 당신이 월터 미티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사람이 없냐고 묻는다. 월터는 e-하모니의 토드를 불러내어 구금에서 풀려난다. 토드는 월터가 프로필을 삭제하기 전까지 엄청난 윙크를 받았다며 이야기한다. 월터와 지속적으로 통화하던 토드가 그의 프로필에 여행기록을 등록한 덕분이었다. 토드는 셰릴 멜호프가 결국 e-하모니 사이트를 탈퇴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결국 해고당한 월터는 어머니의 피아노를 판매한다. 피아노 값으로 받은 수표를 들고 있는 월터에게 어머니는 지갑에 넣으라며 숀이 선물해준 가죽 지갑을 꺼낸다. 어머니가 혹시 몰라 지갑을 보관하고 있었다. 월터는 지갑에서 25번 사진의 필름을 찾아내고 Life 사무실에 가서 테드에게 사진을 전달한다.

 퇴직금을 받으러 온 월터는 우연히 셰릴과 마주친다. 셰릴과 대화를 나누면서 셰릴이 전남편과 재결합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월터는 셰릴에게 데이트 신청하고 셰릴은 승낙한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걷던 중에 가판대에서 Life 폐간호를 보게 되는데 표지에 실린 25번 사진은 일하고 있는 월터 미티의 사진이었다.

 

현실이 상상을 넘어서는 순간

 

 분명 여기저기 허점이 많이 보이고 아쉬움이 많은 영화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왜 이렇게 좋을까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볼 때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보게 됩니다. 주인공 월터 미티는 유일한 취미가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가 상상할 때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죠.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는 상상에 몰입합니다. 어머니가 쇼핑할 때 숀이 왔다가 갔다는 이야기를 해도 듣지 못해 뒤늦게 알게 되고, 짝사랑하는 셰릴이 전남편이 냉장고를 고치러 온 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도 다른 상상을 한 탓에 오해를 하고 말죠. 이런 월터를 벤 스틸러가 연기합니다. 벤 스틸러의 얇은 얼굴에 큰 푸른 눈은 몽상에 빠진 사람 그 자체입니다. 푸른 눈은 상상의 세계를 보는 창문 같습니다.

 영화가 가진 주제는 명확합니다. Stop dreaming. Start living. 상상은 그만하고 현생을 살라는 이야기죠. 월터가 상상하는 순간들을 살펴보면 월터가 상상은 방어기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하필이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순간에 직장 상사를 만나게 되었을 순간에, 짝사랑하는 여자가 전남편 이야기를 할 때 상상합니다. 그는 직면하기 싫은 상황에서 상상으로 도피합니다. 하지만 그 직면하기 싫은 상황이 현실이죠. 월터의 상상이 클수록 그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마치 그의 무채색 옷처럼 그의 삶은 무미건조합니다.

 이 유약한 인물이 상상을 그만두는 순간 관객은 짜릿함을 느낍니다. 그의 삶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월터의 현실이 상상을 따라잡은 뒤로 그는 엄청난 모험을 겪습니다. 바다에서 상어와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화산 폭발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이제 그는 붉은색 니트를 입고 있습니다. 무채색 삶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죠. 그가 이 와인색 니트를 입고서 통과하는 장면은 영화가 가진 큰 매력입니다. <리틀 포레스트>가 시골 풍경의 소소한 자연을 담고 있다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대자연의 웅장함을 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월터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아이슬란드를 질주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자연이 가진 힘 덕분입니다.

 월터는 누구도 하지 못할 모험을 떠났지만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코 '일상에서 벗어나 꿈을 성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월터는 단 한 번도 화산 폭발에 휘말리고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것을 꿈꿔본 적이 없습니다. 대단한 꿈을 꾸고 모험을 상상하는 일은 '현실을 살아라'라는 주제와 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은 현실이 된다>에서 감독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죠. 

 월터의 어머니는 월터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에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이름이 '파파' 존스여서 아버지를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고 말합니다. 월터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실제로도 그랬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어려운 현실에서 항상 도망쳐왔으니까요. 하지만 모험을 떠난 뒤 월터가 아이슬란드에서 파파존스에 도착했을 때 가게에서 벗어납니다. 콜라 컵에 적힌 'Papa'라는 글자가 아버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죠. 그는 이제 슬픔에 직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월터의 모험은 영화 내에서 설득력을 잃지 않습니다. 가계부를 일일이 손으로 적던 소심한 사람이 위험에 뛰어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월터는 원래 무수한 잠재력을 가진 인물임을 영화에서 계속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시절 월터는 모히칸 머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 대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보더였습니다. 이처럼 모험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마주하기 힘든 현실 속에 자신의 본심을 숨겨 살아왔던 것이죠. 아버지가 여행일지 노트를 선물한 것이 이해됩니다. 아버지는 월터가 언젠가 반드시 여행을 떠날 사람이라고 믿어왔을 겁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남겨주었던 배낭과 여행일지는 이제 월터 보고 여행을 떠나라 부추깁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살며시 등을 밀어주는 방식으로 말이죠.

 숀 오코넬이라는 기인은 어렵게 눈표범과 마주치고는 정작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 난 개인적으론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순간 속에 머문다고요?"
"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숀 오코넬이 말한 순간은 카메라 너머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렌즈 뒤에 있는 자신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의 낙차가 큰 영화입니다. 이 낙차가 클수록 관객이 느끼는 감동과 재미가 커집니다. 그린란드 술집에서 헬기에 올라타며 현실이 상상을 따라잡는 장면이 가진 울림이 큰 까닭은 이 낙차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서 계속 기억 남는 장면을 하나라도 남긴다면 그 영화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분명 이 영화는 성공한 영화입니다.

 

사라지는 것들에 관해

 

 월터는 사라지는 회사에서 사라지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필름 원화 관리자라는 직업이죠. 디지털카메라가 발명되면서 필름 카메라 산업은 완전히 죽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필름 카메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지만 이 영화가 나올 당시에는 출판 산업과 필름 산업은 종말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월터는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은 이미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 또는 사라져 가는 것들의 찬란했던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없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철저히 현재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습니다. 과거를 미화하거나 처량하게 그리워하지 않죠.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월터는 새로운 이력서를 쓰는군요.

 사진에 대해서는 이미 <8월의 크리스마스> 리뷰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사진은 순간을 인화지에 기록하는 예술이죠. 사진은 이미 지나간 순간을 담고 있는 매체입니다.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소재를 다루기에는 최적의 매체인 셈이죠. 사진은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찍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진은 그리운 것입니다. 벤 스틸러 감독은 실제로 폐간된 사진 잡지인 Life를 영화에 담음으로써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세상은 급격하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수많은 방식으로 외적 원인에 의해 휘몰리며, 우리의 운명과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동요한다.'라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그저 휩쓸리면서 살아가기 일쑤입니다. 그 사이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저 멀리 휘몰려온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사회의 풍랑은 더욱 거세지고 빨라졌습니다. 아날로그를 상징하는 필름을 잃어버린 사건은 어쩌면 외적 요인에 의해서 길을 잃어버린 현대인을 상징하는지도 모릅니다.

 감독은 35mm 필름 촬영을 하면서 영화 외적 제작 방식으로도 영화 주제에 충실히 다가갑니다.


 이 외에도 소소한 재미가 많은 영화입니다. 월터가 사진을 단서 삼아 사라진 25번 사진을 찾고 있다는 말에 미스터리 소설 창작 수업을 듣는 셰릴은 흥분해서 사건에 개입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도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자 민망해서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합니다.

 "미스터리 소설반 선생님은 확실한 단서 하나면 나머지는 저절로 풀린댔어요 '엄지손가락, 물' '왜 진작 몰랐을까!'"

 추리 장르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순간이죠.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귤 케이크' '사진' '엽서' 아! 왜 진작에 알아채지 못했을까?! 할리우드 서사의 가장 기본적인 기법 중 하나이죠. 중요한 단서는 초반에 사소하게 제공해라.

 뿐만 아니라 곳곳에 패러디도 있습니다.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 월터는 동일한 기종의 빨간 차와 파란 차 중에 선택하게 됩니다. 월터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한 것처럼 빨간 차를 선택합니다.

 보는 내내 소소한 재미가 많고 웃음 짓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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