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리뷰 -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
오늘도 어느 날

<걸어도 걸어도> 리뷰 -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

by 하노(hano)

※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1. 줄거리
  2. 가족이라는 이유로
  3. 굴레

 

줄거리

  시놉시스

그 해 여름,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해 여름, 우리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습니다…
 바다에 놀러 간 준페이는 물에 빠진 어린 소년 요시오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 든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각자 가정을 꾸린 준페이의 동생들 료타와 지나미는 매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고향집으로 향한다. 다시 올 수 없는 단 한 사람, 준페이를 기리기 위해… 그리고 그 자리에 초대받는 또 한 사람, 요시오 역시 매년 준페이의 집을 방문한다. 그 해 여름 역시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모인 가족들로 왁자지껄한 하루가 흘러갈 무렵… 요시오, 그만 와도 되지 않아요? 차남 료타는 어머니에게 이제 그만 요시오를 놓아줘도 되지 않냐는 말을 넌지시 건네고, 엄마는 그런 료타의 질문에 지난 10여 년간 숨겨왔던 진심을 쏟아내는데…

(출처 : 다음 영화)

  자세한 줄거리

 영화는 은퇴한 노년의 의사 요코야마 코헤이가 긴 거리를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을 시작된다. 노인은 느린 걸음으로 바다에 도착한다. 노인은 길 건너편에서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가 금방 되돌아간다.

 화면은 마을 풍경을 담는 설정샷으로 넘어간다. 바닷가 마을에 전철이 요란하게 지나간다. 전철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부부와 어린 소년이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막차 타고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지 묻는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소년은 아버지의 이름을 료짱이라 부르며 이야기한다. 아버지의 이름은 요코야마 료타였다.

 집에서는 노년의 여성(토시코)과 딸(치나미)이 음식을 준비하며 료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시코와 치나미는 유카리와 아츠시에 대해서 두 사람 앞에서는 하지 못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료타의 부인인 유카리는 전남편과 사별하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료타와 재혼을 했다. 전철에 함께 타고 있던 소년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 아이의 이름은 아츠시였다. 

 료타네 부부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식당에 들어갔다. 잠시 부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료타와 아츠시는 어색한 공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료타는 학교에서 왜 죽은 토끼를 보고 웃었냐고 묻자 아츠시는 친구가 토끼에게 편지를 쓰자고 하는 것이 웃겨서 웃었다고 대답한다. 료타가 그게 왜 웃기냐고 묻자 아프시는 아무도 읽지 않는 편지를 왜 써야 하는지 반문한다.

 료타 가족은 본가로 들어가는 길에 집에서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당부한다. 유카리는 아츠시 보고 료타를 료짱이라는 호칭을 좀 참아주면 안 되냐고 묻지만 아츠시는 고집을 부린다. 료타는 자신의 실직 상태에 대해 집에 이야기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료타네 부부가 본가에 도착하고 요코야마 집안의 모든 구성원이 집에 모였다. 가족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먹기도 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코헤이)는 작업실에 들어가서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할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츠시는 할아버지의 작업실에 들어가서 내부를 구경한다. 할아버지 작업실에는 약통으로 가득한 벽면이 있었다. 아츠시가 약 이름을 읽는 동안 할아버지가 작업실에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아츠시에게 장래희망을 묻는다. 아츠시는 피아노 조율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한다. 할아버지는 아츠시에게 의사는 보람 있는 직업이라며 의사가 되기를 권한다.

 료타네 가족 세 사람과 할머니(토시코)는 산소에 가기로 한다. 15년 전, 료타의 형 준페이는 바다에 빠진 소년 요시오를 구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무덤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 네 사람은 노란 나비와 마주친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다. 준페이가 구해낸 요시오가 집에 찾아왔다. 가족들은 이제 대학 졸업을 한다는 요시오에게 근황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요시오는 별 볼 일 없는 광고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거라는 대답을 하고는 준페이에게 감사하고 준페이의 몫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대답한다. 인사하고 떠나가는 요시오 군에게 할머니는 내년에도 찾아오라고 이야기한다.

 치나미 부부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 시간, 노부부와 료타 부부와 아츠시는 함께 식사를 한다. 료타네 가족은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어른들은 레코드와 음악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가 레코드 하나를 갖고 와서 료타보고 전축으로 틀어보라고 한다. 음악이 흐르자 할아버지는 갑자기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는 급히 자리는 뜬다.

 저녁 식사 이후 목욕시간 할머니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할머니는 거실에 들어온 나비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준페이의 무덤에서 본 것과 같은 노란 나비였다. 료타는 준페이의 영정사진에 앉은 나비를 잡아다가 풀어준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와 료타, 아츠시는 바다에 나간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자 어느새 도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마중을 나오고 세 사람은 버스를 타고 돌아간다. 버스를 탄 뒤 료타는 갑작스럽게 할머니가 물어보던 스모 선수의 이름이 기억이 난다. 료타는 항상 한 발 늦는다고 말한다.

 3년 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시간이 흐르고 료타네 가족은 준페이 무덤을 찾았다. 료타는 중학생이 되었는지 교복차림이다. 뒤늦게 한 아이가 더 나타난다. 료타와 유카리 사이에 생긴 딸이었다. 네 사람은 무덤에서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노란 나비를 만난다. 세 사람이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영화는 끝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항상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작 <걸어도 걸어도>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15년 전에 죽은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가족들이 모여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사건의 전부이다. 이토록 사건이 간결한 영화는 흔치 않다. 사건은 단순하지만 기저에 흐르는 감정선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만화계에는 흔히 대사 없이 한 화를 채울 수 있다면 천재로 간주한다라는 말이 있다는데, 사건 없이 장편 영화를 촬영하는 것도 그 정도 아니,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른 감독만 펼칠 수 있는 연출이 아닐까 싶다.

 

 

  가족이기 때문에

  요코야마 집안은 고지식하고 까칠한 할아버지와 자애로운 할머니,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사려는 딸과 사위 그리고 도쿄에서 의젓하게 살아가는 막내아들로 구성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한 집이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심상치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원래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다큐멘터리의 특징들이 종종 보인다. 관조적인 시점과 고정된 픽스 샷 등이 그렇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감독은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집안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는 그대로 비쳐보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상실에 대해 다룬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누군가 떠난 자리에 그대로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영화이다. 요코야마 집안사람들은 공통의 상흔이 마음 깊숙이 남아있다. 15년 전에 한 소년을 구하고 희생한 준페이의 존재이다.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을 그리며 버티는 삶을 살아간다.

 감독은 이들은 그저 불쌍한 유가족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작품 속 키키 키린 배우의 대사처럼 상처 입은 존재는 증오를 품는다. 마냥 슬퍼하기만 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상실을 버티는 방식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기도 한다. <걸어도 걸어도>가 훌륭한 점은 그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이럴 거야'라는 어림짐작으로 고통받는 가족을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가족이 아니라 실존하는 가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요코야마 가족을 보고 있으면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묻게 된다. 각자 본심을 숨기고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가족은 <걸어도 걸어도>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모두의 가족들은 조금씩 이런 면을 갖고 있다. 가족 구성원들의 언어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들리지만 그 속에 바늘이 들어 있어서 폐부를 정확히 찌른다. 간접 화법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속에는 발화되어 나온 말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만나는 게 불편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심장을 찌르는 말을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만남은 계속된다. 가족이라는 견고한 집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지만, 균열이 집을 무너트릴 정도로 크지는 않다.

 

  가족이라도

 큰 딸인 치사미는 속내를 감추고 있다. 나이가 든 부모님이 돌아가실 것 같자 부모님의 재산이 탐나기 시작한 것이다. 치사미는 유산을 받을 명목을 만들기 위해서 친정집에 들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직접적인 대사나 장면은 없지만 치사미가 재산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녀의 어린 자식들은 할머니 댁에서 이 방은 내 가 쓸 거고 저 방은 네가 쓰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치사미는 이미 집에서 아이들 앞에서 본가로 들어갈 거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평생을 가정 주부로 살아온 할머니는 순진하고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딸의 저의를 이미 파악했다. 딸이 넌지시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갑자기 찹쌀가루 이야기를 하면서 딴청을 피우고 자리를 피한다. 딸이 집에 들어오면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막내아들이 본가에 찾아오기 힘들 거라는 생각 때문에 할머니는 딸의 뜻에 따르고 싶지 않다.

 회화 복원가인 료타는 실직 상태인 것을 가족들에게 비밀로 부친다. 료타는 형에 비해 융통성이 없다느니 인기가 없었다느니 하며 비교를 당해왔다. 형이 죽은 뒤에 료타에게 형은 평생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료타의 열등감은 평생 풀 수 없는 저주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편하다.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고 싶었고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었지만 그는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자신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한 자신이 실망스럽다.

 부모님은 막내아들이 과부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탐탁지 않다. 그래서 딸과 단 둘이서 뒷담화를 나누며 킬킬거리기도 하고 며느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며느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안 보이게 이뤄지는 차별에서 며느리는 시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노력하기도 한다.

 이처럼 가족에게도 숨기고 있는 각자의 비밀들이 있다. 이러한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한 가족 간 비밀이 상징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장면이 저녁 식사부터 목욕까지 이어지는 씬이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바람을 핀 적이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라는 엔카를 부르곤 했다. 식사 중에 이 노래가 나오자 할아버지가 불편한 듯 식사를 급하게 마치려는 이유이다. 할아버지는 아무도 자신이 바람을 핀 경력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가족 모두가 공공연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굴레

 

 작품에 등장하는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의 가사는 작품의 또 다른 주제를 표현한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리고

 이 가사는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삶

 

 작품 속에서 죽은 사람 혹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스치듯 조용히 지나가는 이 이야기들은 관객들 머릿속에 한 가지 주제를 남긴다. 관객들은 은연중에 어떠한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결국 우리는 우리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사실이다.

 할머니는 손주들과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 전날 초밥 배달을 주문해두었다. 오랜 기간 이용해온 초밥 집이었다. 할머니와 딸은 초밥 집의 주인이 아들로 바뀐 뒤로 맛이 변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료타는 본가에 도착해서 역 주변이 많이 바뀌어서 늦었다고 이야기하며 역 근처에 서점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서점 주인의 심장이 나빠서 입원했다고 대답한다.

 유카리는 아츠시에게 사람은 죽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준다. 읽는 것도 아닌데 죽은 토끼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아츠시는 하룻밤 사이에 뭔가 느낀 것이 있는지,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마당에 나와 하늘을 쳐다보며 죽은 아빠에게 속으로 편지를 쓴다. 아츠시는 아빠처럼 피아노 조율사가 되고 싶다고, 그것이 무리라면 의사가 되고 싶다고 죽은 아빠를 향해 말한다.

 누군가의 삶이 끝나면 누군가는 그 삶을 이어받는다. 초밥 집주인이 은퇴하자 아들이 이어받은 것처럼. 밤 사이에 앞집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은퇴한 할아버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구급차를 타고 도착한 응급대원들 뒤에서 불안한 듯 서성거리기만 한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는 류타는 자신의 삶을 끝낸 아버지가 안타깝고 아버지 뒤를 잇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병원은 역 근처에 있던 서점처럼 사라져 버릴 테니까. 

  엔딩 크레딧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국 모든 비밀은 풀리고 가족들은 서로 화해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편한 방식의 엔딩을 취하지 않았다.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서 료타가 '항상 한 발 늦는다니까'라고 자책하는 것처럼 인생사는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항상 한 걸음 늦기 마련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와 아들, 손자 세 부자가 가족의 상처가 담긴 바다로 가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이들이 이전보다 관계가 개선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다시 찾아오라는 어머니의 부탁에도 료타는 버스 안에서 설날에는 오지 않아도 되겠다고 이야기하고 며느리는 다음에는 자지 말고 그냥 돌아오자고 한다. 결국 요코야마 가족이 가진 문제는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료타는 부모님이 돌아가고 나신 뒤에 부모님과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쇼핑가는 것이 일평생 꿈이었던 어머니는 료타의 차를 타보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아들과 손주와 함께 축구장에 가보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가족들과 형의 무덤을 찾은 료타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새 아이를 가졌고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그는 또 한 발 늦은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료타는 딸에게 노란 나비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노란 나비는 겨울이 되어도 죽지 않은 흰나비가 이듬해 노란 나비가 되어 나타난 거래."

 딸이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냐고 묻자 어머니가 과거에 료타의 질문에 대답한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어머니에게서 아들에게로 아들에게서 손녀에게로 이어지듯 삶은 반복되고 이어진다. 걸어도 걸어도.

 마지막에 카메라가 틸딩되면서 마을의 전경이 보인다. 오프닝 뒤에 영화 타이틀이 나올 때와 똑같은 화면이 길게 이어지면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전철이 지나간 뒤에야 화면은 페이드 아웃되며 사라진다. 오프닝과 크레딧에 동일한 화면이 나오면서 수미상관의 구조를 만든다. 이 수미상관 구조는 마치 다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달려가는 순환 열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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