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는 행위
오늘도 어느 날

사진찍는 행위

by 하노(hano)

 오랜만에 책 서평이나 영화 리뷰가 아닌 글을 쓰려니 무척 어색합니다.

 원래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할 때 목적은 영화 리뷰나 책 서평을 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의식이 가득 찬 상태로 써서 부끄럽지만, 제 첫 포스팅인  「어느 날」에 대한 글을 읽어보시면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마음가짐이 적혀있습니다. 제 닉네임도 아이디도 이 목적에 맞춰서 지었습니다. 그 목적이란 김용택 시인의  「어느 날」처럼 하루하루가 소중함을 깨닫고 이 깨우침을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매일을 기록하자는 마음에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거창하게 적었지만 결국 일기 쓰려고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어느날

어느날은 김용택 시인의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에 첫 번째로 수록된 시의 제목이다. 우선 시의 전문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어느날 김용택 나는 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 어느날 나는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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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이름에 어느 날이라는 뜻의 oneday의 앞 자를 합쳐서 hano라는 닉네임을 결정하고 날마다 기록하자는 뜻에서 아이디에 archiving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계정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고서 마침내 블로그를 만들고 생성하고 나니 이 뜻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러기가 영 쉽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리뷰를 주로 쓰고 있지만 '필름포럼'에 관한 포스팅이 원래 쓰고자 했던 글에 가장 가깝습니다. 이렇게 주절주절 닉네임과 아이디에 대해 쓰는 것은 이 게시물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사진과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출처: 후지필름 연남점 인스타그램

 

 저는 현재 후지필름 미러리스 X-T30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후지필름 연남점에서는 매달 톺아보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후지필름 카메라 중 한 기종을 정해두고 그 카메라에 대해 설명해주는 정기 세미나입니다. 저는 올해 초에 톱아보기에 참여했었습니다. 그곳에서 XT-30에 대한 집중 설명을 들을 줄 알았는데 세미나의 주된 내용은 사진을 찍는 행위와 후지필름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설명에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더듬거리며 제 방식대로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1. 사진을 찍는다는 것

 

 사실 모두가 알다시피 카메라 시장은 죽어가는 시장입니다. 최근 유튜브 열풍으로 전문적인 카메라를 찾는 사람들이 제법 늘었지만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진을 많이 찍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는 일은 전에 없던 일입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이 나오면, 여행을 가서, 재미있는 장면을 볼 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습니다. 핸드폰에 들어온 카메라로 말이죠. 카메라는 팔리지 않지만 모두의 손에 카메라가 들린 아이러니한 시대입니다.

 사진을 왜 찍나요? 나중에 보려고 찍습니다. 왜 나중에 봐야 하는가요? 생생하게 추억하려고 봅니다. 사진을 찍는 건 미래를 대비하는 행위입니다. 언젠가 이 순간이 그리워질 때를 위해 사진을 찍지요.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의 순간을 잡아두어서 고정시켜놓는 매체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그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때 같이 있었던 사람, 먹었던 음식, 기분, 그날의 날씨와 심지어 냄새까지도 떠오릅니다. 사진 속에서 순간은 고정되어있지만 기억은 그 앞뒤 모두 유기적으로 지나갑니다. 사진이 많은 사람은 추억이 많은 사람이죠. 어쩌면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혼자 남아 슬픈 사람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기록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생겼습니다. 그 사람들은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기억하지 말고 그 순간을 살라고 말하죠. 맞는 말입니다. 렌즈를 통해 보는 것과 직접 눈을 통해 보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카메라를 보고 있다가는 정작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못 담기 일쑤입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직접 참여해야 합니다. 사진 찍어놓고 나중에 찾아보기는 하나요? 일 년 중에 앨범을 몇 번이나 뒤져보죠? 찍지 말고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사진 찍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놓고 찍지 말라고 이야기하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저는 사진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진을 찍으세요. 대신 정성껏 한 장만 찍으세요. 과거에 사진 기록은 물리적 실체가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면 필름이 있어야 하고 필름에 사진이 기록됐습니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양이 그날 가지고 있던 필름 롤 개수에 정해졌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정성껏 아껴가며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었죠. 하지만 스마트폰은 하고자 하면 무제한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용량이 부족하면 클라우드를 이용하거나 외장하드로 옮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만 있다 하면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켜고 봅니다.

 정성껏 찍은 사진은 다릅니다. 결과물의 질적 차이도 나지만 촬영한 사람의 결과물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정성이 들어간 물건을 소홀히 다룰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찌그러진 그릇이라도 직접 구운 그릇이라면 질릴 일이 없습니다. 정성껏 찍은 사진은 들여다보게 됩니다. 정성껏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경험이 됩니다. 네, 찍지 말고 '경험' 하시길 바랍니다.

 

2. 카메라를 산다는 것

 

 혹시 카메라 구입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카메라를 처음으로 사고 받았을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기분이 하늘까지 들떠 있었습니다. 항상 손에 카메라가 들려있고 손에 없을 때는 가방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이것저것 보이는 것마다 사진을 찍어댔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카메라를 사면 세상이 이뻐 보인다는 것을.

 카메라를 사면 평소에 안 보이던 풍경들이 보입니다. '이거 찍으면 이쁘겠는데? 이곳에 저런 곳도 있었네? 오늘 노을은 사진 찍기 딱 좋게 진다.' 카메라를 처음 구매하면 이런 생각이 항상 떠오릅니다. 세상을 좀 더 자세하게 아름답게 보는 시각이 생겨납니다. 어쩌다가 카메라를 두고 나오면 아쉬움이 따릅니다. 아 저거 찍었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죠.

 카메라를 사고 나면 이제는 렌즈를 추가로 구매합니다. 렌즈를 새로 얻으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전에 뷰파인더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뷰파인더에 담깁니다. 렌즈를 구매하면 그 렌즈의 화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광각, 표준, 망원 렌즈마다 보이는 세상이 다릅니다. 카메라를 구매한다는 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는 것입니다. 

 

3. 기록은 눈에 보이는 곳에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혹시 지난주 목요일 점심으로 뭐 드셨는지 기억나시나요? 아마 특별한 음식을 먹지 않은 이상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너무나 다행히도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이니까요. 중요하지 않은 일들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또 다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초등학생 때 일기 써보셨죠? 그 일기장 다시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초등학생 때 일기장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이전에 쓴 일기나 글을 다시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 있으실 겁니다. 그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기록이 마냥 의미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니요. 오히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뇌는 익숙한 것은 무시합니다. 영어에서 look과 watch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보고 있지만 의외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의 뇌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일상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쉽습니다. 의미 없는 일상일 수 있지만 기록한다면 그리고 다시 펼쳐본다면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나가면 잊히지만 기록하면 추억됩니다.

 오늘 점심에 찍은 사진입니다. 오랜만에 호화롭게 소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적당하게 잘 구워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진을 찍어두지 않으면 오늘 뭘 먹었는지 기억이나 날까요?

 기록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배움을 주기도 합니다. 초심을 되살려주기도 하죠. 하지만 기록하고서 다시는 보지 않는다면 그마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습니다. 앨범은 어쩌다가 한 번 펼쳐봅니다. 하지만 액자에 걸린 사진은 매일 몇 번씩 봅니다. 액자 속에 걸린 사진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앨범과 액자의 차이는 기록이 눈에 보이는지 아닌지에 있습니다. 기록하되 꼭 눈에 보이는 곳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주 다시 펼쳐보세요. 아마 많은 게 바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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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필름에 대한 이야기도 적고 싶었는데 광고같은 느낌이 들까봐 생략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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