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오늘도 어느 날

어느날

by 하노(hano)

 

 

 

 어느날은 김용택 시인의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에 첫 번째로 수록된 시의 제목이다.

 

 

 우선 시의 전문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어느날

 

김용택    

 

  나는

  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

 

  어느날 나는 태어났고

  어느날 당신도 만났으니까.

 

  그리고

  오늘도 어느날이니까

 

  나의 시는

  어느날의 일이고

  어느날에 썼다.

 

 

 

 시인은 뛰어난 통찰력으로 각각의 모든 날이 어느 날로 치환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시를 접한 뒤 나는 하루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왜냐하면, 오늘도 어느 날이니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어느 날이니까.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기대감을 찾아준 시인에게 감사하다.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모든 신입생은 기본교양으로 영어작문 강의를 들어야 했다. 어학원 소속 강사님은 중간 과제로 '나의 꿈'에 대한 주제로 한 바닥 분량의 영문 작문을 해오라고 했다. 아마 강사님이 원했던 내용은 장래에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한 문장과 왜 그 직업을 갖고자 하는지에 대한 이유 몇 가지를 간단한 수준으로 적어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글을 적어갔다. 정확한 문장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My dream is living everyday differently."

 

 그때 나는 매일을 다르게 살아가고 싶었다. 매일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는 하루가 길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갈까. 나의 결론은 하루하루가 일상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오늘이 어제와 같으니 시간이 그저 흘러만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다르게 살아가길 꿈꿨다. 나는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매일을 다르게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것도 잠시였을 뿐. 나는 이런 생각을 잊었다. 일상의 힘은 강했고 나는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날들을 감당하기에도 벅찼다. 강의를 듣고 과외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코앞에 닥친 과제들은 내 눈을 가려 저 멀리 있는 다짐은 볼 수 없었다. 시간의 흐름 위로 매일 달리 살고 싶다는 마음은 시냇물 위의 낙엽처럼 떠내려갔다. 그 시냇물 위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도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는데, 그 나뭇가지는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흘러가는 동안 이 바위 저 바위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던 나는 여러 가지 벽에 부딪혀 지치고 말았다. 나는 군입대 신청을 해야 한다는 변명으로 휴학을 신청했다. 그 뒤로 1년 반 정도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휴학하고서 3개월 정도는 재학 중일 때보다도 상태가 더 나빴다. 집안에만 처박혀 그야말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책을 고르던 중에 김용택 시인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가 눈에 띄었다. 평상시에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하면서도 시를 전혀 즐기지 못한다는 바끄러움을 느끼던 나는 제목이 쉬워 보인다는 이유로 책을 골랐다. 그때 이 시를 만났다.

 

 「어느 날」이라는 시는 내 머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시냇물에 떠내려간 낙엽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시를 읽고서 나는 그 모든 날이 어느 날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느 날에 멋진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기대한다. 

 

 

 각각의 어느 날 중 특별한 어느 날들은 훗날 어떤 날로 기억될 것이다. 너를 처음 만난 날, 유난히 맛있는 커피를 마신 날, 단골 식당이 생긴 날…. 훗날 어떤 날들로 기억될 날들을 좀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매 순간 의미를 찾아 매일 다른 날들을 살 수 있도록 기록을 시작한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오늘도 어느날

하노(hano)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