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좋아하세요?
오늘도 어느 날

영화...좋아하세요?

by 하노(hano)

 

 나는 왜 영화를 좋아하는가? 혹자는 인간은 원래 즐기기 위해 태어났다며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로 정의한다. 또 누군가는 이야기는 생존을 위한 전략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이야기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현생 인류는 이야기를 즐기는 자들의 후손이라는 설명이다. 모험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 안전하게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설명, 인간에게는 거울 세포가 존재해서 이야기 속 인물에게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설명 등등. 많은 설명이 존재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거 말고 '나는' 왜 영화를 좋아하냐고.

 오랜만에 <빅 피쉬(Big Fish)>를 보고서 생긴 의문이다. 나는 왜 영화를 좋아할까? 정확히는 나는 '서사'를 좋아한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소설,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 서사가 포함된 장르는 빠짐없이 모두 좋아한다. 우선 내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 처음부터 시작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우리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나는 비디오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핑구 비디오를 틀어놓으면 혼자 남겨두고 외출하고 다녀와도 티비 앞에 앉아 있었다고한다. 심지어는 갓난아기 때 영화관에 들어가도 2시간 동안 얌전히 있었다고한다. 영화를 보던 건 아니고 자고 있던 거지만.

  6살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시작하셨다. 유치원 하원을 하고나면 나는 역시 티비를 봤다. 초중등학생 때까지도 티비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퇴근을 늦게하시는 날이면 온 집안이 고요했다. 귀를 울리는 냉장고 진동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가 매우 거슬렸다. 그래서 늦은 시간까지 티비를 켜뒀다. 주로 보던 것은 애니메이션이었다. EBS와 지상파에서 방영하던 것부터 투니버스 같은 케이블 티비에서 방영하는 것까지 다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친구를 통해 대여점 만화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꽤 많은 돈을 만화책 빌려보는 데 쓴 것 같다. 이때 만화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고등학교 3학년, 나름 내신 성적이 괜찮았던 나는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갑작스럽게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대학 원서를 넣을 시기가 되자 갑자기 19년의 세월을 반추해보고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나는 이야기를 너무 좋아했고 가장 손쉽고 저렴하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직업은 작가였다. 작가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고 그마저도 없으면 펜과 원고지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문예창작학과를 노리는 학생은 많고 문예창작과의 문은 턱없이 좁았다. 경쟁률은 기본적 500:1을 넘는 건 기본이었고 당시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경쟁률은 3000:1을 넘었다. 조선 시대 과거를 보기 위해 전국의 선비가 모인 것처럼 문예창작학과의 벽을 뚫기 위해 전국의 작가 지망생들이 몰려들었다. 글이라고는 써본 적 없던 나는 당연히 모조리 낙방했고 국어국문학과에 힘겹게 입학했다.

 이처럼 이야기는 항상 내 주변에 있었다. 문제는 이 고등학교 3학년, 이 시기였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때이다. 난생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그 애와 공통점이 바로 영화였다. 당시 나는 실제로 본 영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와 대화하기 위해 영화에 대해 잘 아는 척했다. 그러고는 실제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영화를 복수전공하고, 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스태프로 일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애와 연락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그때는 영화를 좋아하고 잘 아는 척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영화를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

 강백호가 그랬듯이 그 안에 있다보니 어느 새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다. 수단이 목적을 넘어섰다.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없다면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친구가 좋아해서 연인이 좋아해서 가족이 좋아해서 나도 따라서 좋아하게 되는 일. 사람은 온전한 개인일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누구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남의 경험이 내 경험에 들어 있듯, 내 경험도 남의 경험에 연루되어 있다.'

(『글쓰기의 최전선』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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