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스 플랜> 리뷰 - 그깟 계획, 일단 이 상황부터 벗어고 보자
오늘도 어느 날

<매기스 플랜> 리뷰 - 그깟 계획, 일단 이 상황부터 벗어고 보자

by 하노(hano)

주관적 해석과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기스 플랜 메인 포스터

 


[목차]

 

  1. 소개
  2. 이게 뭐지?
  3. 언어적 콘돔

 

소개

 

 너도나도 신년 계획을 세우는 시기다. 누군가는 해가 넘어가기 전에, 누군가는 새해 첫날에, 누군가는 게으름 피우다가 일이 주 흘려보낸 뒤에 계획을 세운다. 어쨌건 지금은 계획을 세우기에 참 좋은 시기인 것이다. 누군가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계획을, 누군가는 실행 가능성 있는 계획을 세울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작년 이맘때쯤 만든 계획의 달성도를 회고해보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다. 나는 의외로 작년 목표 대부분을 실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의도와는 상당 부분 달랐다. 취업을 위해 세워둔 계획이었는데 취업의 문고리도 잡지 못했다. 그래, 뭐 모든 게 계획대로만 흘러갔다면 난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있겠지.

 <매기스 플랜>의 주인공 매기는 대학교 교수로 일하는 뉴요커다. 매기의 장점은 진보적이고 자기 판단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매기는 자신이 6개월 이상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비혼모가 되려 한다. 대학교 동창인 가이에게 정자를 기증받았다. 절묘하게도 매기가 계획을 실행하려는 찰나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같은 대학교에서 일하는 존과의 인연은 매기에게 이중 지급된 월급으로 시작되었다. 존에게 지급되어야 할 금액이 매기에게 잘못 전달된 것이다. 존은 매우 매력적인 남성이자 두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존의 부인인 조젯은 승승장구하는 대학 교수였다. 조젯은 존을 억압하고 조정하려 들었다. 존은 조젯에게 잘못 지급된 월급 같았다. 매기는 자신이 존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존 역시 자신을 존중해주고 이야기가 잘 통하는 매기에게 끌린다. 두 사람의 합리적이고도 구원적인 외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매기와 존 사이에서는 꿈꾸던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 살림을 꾸렸다. 매기는 여전히 대학교에서 일하며 존은 3년 동안 소설 창작에 힘 쏟았다. 하지만 존은 조금씩 변해간다. 존은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육아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조젯이 출장을 나갈 때마다 존과 조젯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를 돌보는 일까지 매기가 해야 했다. 존에게 매기는 천천히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갔다. 매기는 육아와 살림, 업무 속에 점점 지쳐간다. 매기는 조젯의 새로 출판된 책 설명회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매기는 조젯이 아직 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매기는 존이 조젯에게 잘못 지급된 월급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조젯이 올바른 수령자였던 것이다! 매기는 조젯에게 다시 존을 데리고 가라는 은밀한 제안을 한다. 매기와 조젯은 합심해서 계획을 세운다. 존은 순조롭게 매기와 조젯의 계획대로 행동하는데, 한 순간 모든 것이 틀어진다. 아니. 이건 계획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아닐지 애매한 상황이 영화 종료 15분에 쏟아진다.

 당당하게 제목에 '계획'을 박아놓고 정작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영화의 전개는 관람객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편으로는 '그래, 계획을 세워도 그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걸!'이란 생각이 든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뭐 대순가. 매기도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좋은 결말을 만났는걸. 모든 게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이 따스한 색감의 영화가 작은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게 뭐지?

 

 이게 뭐지? 뭘 본거지? JTBC의 무명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인 '싱어게인'에서 30호 가수가 이효리의 'Chitty Chitty Bang Bang'을 부르고 난 뒤에 심사위원들의 반응이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폭넓게 구성된 심사위원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특히 규현은 전주 나올 때부터 좋았는데,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심사평을 했다. <매기스 플랜>을 다 보고 난 뒤에 나의 반응이 이랬다.

따스한 색감의 영화

 분명 재미있게 봤는데, 재미는 있었는데, 이게 뭐지? <매기스 플랜>은 시작부터 나를 집중시켰다. 한 겨울의 뉴욕 배경만으로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데, 이렇게 따뜻한 색감이라니! 찰떡 같이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니! 따사로운 컬러 그래이딩과 안정적인 촬영 구도가 눈을 편안하게 했다. 음악 사용마저 화면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소위 말해 '잘 찍고 잘 편집한' 영화였다. 높은 퀄리티의 완성도 높은 화면은 초반부터 나의 눈을 사로잡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화사한 첫인상을 남긴 <매기스 플랜>은 영화가 안정적이고 훈훈하게 흘러갈 거라는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안정적인 화면에 비해 영화는 예상 밖의 전개로 흘러간다.  주인공인 매기는 지나친 안정주의자고 존은 자존감이 낮고 책임감이란 없으며 조젯은 심한 나르시시즘 환자다. 이토록 위태로운 세 사람이 얽히고설킨 아슬아슬한 선로를 걸어간다.

계획을 세우는 매기(왼)와 조젯(우)

 개인적으로 비선형적으로 흘러가는 서사 구조보다는 직선적인 서사 구조를 좋아한다. 주인공이 확실한 목표를 갖고 그 목표 달성까지 흘러가는 이야기를 선호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작법을 따른 시나리오다. 어떤 목표 의식이 없으면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다. 그래서 내가 유럽 영화를 잘 못 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매기스 플랜>은 주인공이 계획은 있지만 영화 전체의 뚜렷한 하나의 목표는 없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매기의 임신 계획은 영화 시작 전반부에 달성되는데, 그  이후의 매기의 목표는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영화를 받쳐주는 힘이다. 불륜과 이혼, 재결합이라는 막장 스토리에 배우의 연기가 마법의 감미료를 뿌려 맛깔스러운 영화로 만들어준다. 완성도 높은 편집과 안정적인 구도, 따뜻한 색감, 좋은 배경음악에 훌륭한 배우의 연기까지. 전체적으로 보자면 <매기스 플랜>은 A급의 옷을 입은 B급 스토리다.

 하지만 과연 저런 기술적인 면들만 이 영화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영화의 주제 의식이 영화 전체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게 뭐 어때? 돌아서라도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따뜻한 색감과 키치 한 음악을 사용해도 막장을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에 잘 버무려졌던 것은 이를 아우르는 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적 콘돔

 

 작중 존은 'like(~인 것 같다)'는 언어적 콘돔이라고 표현했다. 영어 표현에서 콘돔은 Protection으로 표현되어 보호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언어적 콘돔은 누구를 보호하는 콘돔일까? 주로 언제 '~인 것 같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생각해보자. 보통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할 때 ~인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 남자는 성격이 좀 나쁜 것 같아.', '그 옷은 다 좋은데 주머니가 좀 많은 거 같아'처럼 '~같다'는 부정적인 표현의 완충작용을 한다.

  작중 매기의 행동을 보면 언어적 콘돔의 보호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해진다. 언듯 보면 상대가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을 에둘러서 할 때 사용하는 예의 바른 표현 같다. 언어적 콘돔의 기능은 상대의 기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과연 그럴까? 부정적 형용사를 앞 뒤로 '조금'과 '인 것 같아'로 포장하더라도 상대에게 나의 저의는 그대로 전달된다. 전혀 완충작용을 하지 못한다. 그들도 자신이 언제 그 포장지를 사용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기분도 지켜주지 못한다면 왜 언어적 콘돔을 사용하는 걸까? 두 사람의 관계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부정적이고 불친절한 표현은 관계를 헤칠 힘이 있다. '~같다'가 언어적 콘돔이라면 부정적인 말은 언어적인 날붙이다. 아무리 깊고 오래된 관계더라도 한 마디의 말에 끊어질 수 있다. 언어적 콘돔은 이 관계를 보호해주는 말을 한다.

 뒷담화는 참여자들의 유대감을 만들고 공통적인 죄책감과 비밀을 생성한다. 공통의 적에 대해 악담을 할 때에도 언어적 콘돔은 사용된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야, 걔 좀 이상한 것 같지 않냐?' 상대도 나도 동일한 사람을 적대시한다. 그런데 왜 언어적 콘돔을 사용할까? 언어적 콘돔이 관계성 보호 기능을 한다면 오히려 공공의 적을 공격할 때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관계성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적 콘돔의 기능은 관계성 보호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언어적 콘돔의 기능은 말하는 화자, 나 '자신'을 보호하는데 있다. 내가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존이 변했음에도 변함없이 친절한 메기

 매기는 존이 사실상 백수로 생활하면서도 육아와 살림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을 3년이나 지켜봤다. 심지어 자신을 향한 사랑까지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매기는 남편의 전처의 자식들까지 책임지고, 존의 성과 없는 회의 때문에 자신의 업무를 뒤로 미루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매기는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 때문에 매기는 아무도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존은 잘못된 관계를  고치고 전처에게 돌아가고 자신은 남편의 의사를 존중하는 그림을 원했다. 하지만 매기의 이 황당한 계획 속에 단 한 사람도 착한 사람은 없다. 매기는 이혼하자는 말을 꺼낼 용기가 없어 남편과 전처를 이용한 사이코이고 존은 책임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방탕주의자에 조젯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존을 속이는 계획에 가담해 존을 농락했다.

 이 작은 계획이 밝혀지는 순간에 세 사람의 관계는 엉망진창이 된다. 누구 하나 정당한 사람은 없고 가해자만이 남는 상황이 펼쳐진다. 자신이 존을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이 대재앙을 낳았다. 매기의 오랜 친구의 말대로 좋은 의도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로서 '당신'은 '당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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