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리뷰 - 행간을 읽는 즐거움
오늘도 어느 날

<윤희에게> 리뷰 - 행간을 읽는 즐거움

by 하노(hano)

 

 초등학교 읽기 시간에 처음으로 비유에 대해 배웠다.  '물방울 같은 눈망울', '내 마음은 호수요' 등 다양한 예시를 들며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했다. 너무나 쉽게 느껴지고 이렇게 당연한 걸 뭐라고 저렇게 길게 설명할까 생각했었다. 약간의 우월감과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말에 숨겨져 있는 진짜 뜻을 찾아내는 것은 즐겁다. 누군가 알아차렸으면 하지만 아무에게나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나는 알아냈다는 성취감, 글쓴이의 비밀을 공유한 듯한 은밀한 짜릿함, 나름의 논리를 통해 숨겨진 답을 찾아낸 듯한 지적 허영심까지. 하지만 모든 것이 속도가 빨라지면서 많은 것들이 보여지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직접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며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쓰는 편지 대신 바로바로 답장할 수 있는 카톡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쓰지 않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윤희에게는> 편지로 시작된다. 윤희의 오래전 친구였던 쥰은 일본에서 부치지 않을 편지를 썼다. 하지만 쥰과 동거 중인 고모가 편지를 발견하고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그 편지를 받아보는 것은 윤희가 아닌 윤희의 딸 새봄이었다. 새봄은 편지를 읽고 엄마의 오래된 비밀을 알아차린 듯하다. 새봄은 윤희에게 편지 발신지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윤희는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살았지만 이곳에 쥰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윤희는 어쩌면 쥰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윤희에게>에서는 오래된 것들이 등장한다. 손편지와 필름 카메라, 리폼한 장갑. 손편지는 영화의 시작에서 이 영화는 편지의 시대로 회귀함을 알린다. 편지는 설명이 필요 없다. 발신인과 수신인은 생략된 정보를 행간에서 읽어낼 수 있다. 영화는 마치 손편지처럼 중요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동성애가 정신병 취급받는 시대에 살아서 가족들에게 외면받고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는 이야기, 그때의 억울함과 분노를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겠지.

 오랜만에 시집을 펼쳐본다. 수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함축적인 언어들이 펼쳐진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 아무리 치워도 계속해서 쌓이는 오타루의 눈처럼 윤희와 쥰의 마음에는 지워지지 않는 비밀이 있었겠지. 눈이 그치면 봄이 온다. 언제쯤 봄이 올까에 대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낡아 떨어진 장갑을 꿰매서 만든 새로운 장갑처럼 어쩌면 상처 입은 존재도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낡고 상처 입어서 더 소중할 수도 있다. 언젠간 윤희에게도 '새봄'이 올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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