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리뷰 - 집과 영혼
오늘도 어느 날

<노매드랜드> 리뷰 - 집과 영혼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장 가장 오래된 꿈은 나만의 공간을 꾸리는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을 갖고 싶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쯤부터 바라왔던 것 같다. 나의 이런 희망은 비만 오면 우산을 겹겹이 쌓아서 작은 공간을 만들거나, 이불과 베개, 인형으로 작은 요새를 만드는 것으로 표출됐다. 예전에는 좁은 동네에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아무도 참견할 수 없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간을 원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오랜 기간 교환 학생 준비를 했었다. 목적지는 어디여도 상관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장소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한국에서 최대한 먼 곳이면 더 좋았다. 비록 군입대가 늦춰지는 바람에 모든 준비가 무산되었지만, 분명 나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외국에 나가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노매드랜드>는 제목처럼 유목민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펀은 남편과 사별하고, 석고 산업이 무너지면서 남편이 운영하던 공장이 폐쇄되고 집을 떠나게 되었다. 펀은 벤에서 생활하면서도 그 지역에서 멀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취업도 어렵고 거주 지원금도 끊기면서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펀은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유대하며 미국 전역 곳곳을 떠돌아다닌다. 일 년이 지나 그녀는 처음 유목 생활을 시작한 마을로 돌아간다. 그녀는 죽은 남편과 함께 생활하던 집을 정리하고 폐쇄된 공장에 간다. 일 년이 지나 다시 찾은 그녀, 그러나 일 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다큐멘터리 보다도 더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다. 이와 같은 연출은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어떤 생각이나 주제를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해석을 철저히 관객에게 양도한 것을 의미한다. 나의 해석은 이 영화는 이별과 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특히 집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다. 이 영화의 대사는 잔잔하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펀이 유목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마트에서 이웃을 만난다. 이때 이웃집 딸이 그녀에게 '집이 없다는 게 진짜예요?(Houseless)'라고 묻는다. 펀은 아이에게 '아니야 난 집은 있어. 거주지가 없는 거지.(Homeless)'라고 대답한다. 번역된 한국어 표현만 보면 벤이라는 집이 있지만 벤은 이동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머무를 수 있는 거주지가 없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대사에서 중요한 것은 'House'과 'Home'의 차이이다.

 

 영어 표현에서 집을 가리키는 단어는 'Home'과 'House' 두 가지가 있다. 'House'은 건물로서 집을 뜻한다. 'Home'는 정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어 표현 중에 가장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는 '가정'일 것이다. 펀이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유목민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음에도 유목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펀도 여러 번 정착할 기회를 얻지만 매번 붙잡는 손을 뿌려친다. 하루는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던 데이비드의 초대를 받고 추수감사절을 데이비드의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펀은 따듯한 식사와 오고 가는 온기와 대화를 경험한다. 펀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새벽에 도망치듯 몰래 데이비드 집을 떠난다.

 

 아마 그녀는 화목한 가정을 보며 오히려 그곳이 자신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음을 뼈저리게 느낀 듯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영혼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의 집은 따뜻한 집(House)이지만 그녀의 영혼을 위한 집(House)은 아니었다. 그녀는 화목한 데이비드의 집을 보며 자신은 한치도 남편과 지내던 집에서 떠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몸을 뉠 수 있는 물리적인 집은 있었지만 영혼의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집은 없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녀는 이별이 일상인 유목 생활 끝에 영원한 이별이란 없다는 것을 깨우치고 자신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꿈은 나의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있는 장소를 갖고 싶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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