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로맨틱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뷰
오늘도 어느 날

가장 로맨틱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뷰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혹시 디즈니 영화가 어떻게 끝나는지 아시나요? 디즈니 영화는 사랑이 시작하는 순간으로 끝납니다. 공주와 왕자가 사랑에 빠져서 첫 키스를 하거나 결혼식을 올리면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왜일까요? 아무도 그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왕자가 왕이 되어서 정치하는 이야기, 아이를 낳고 육아하며 골치를 썩이는 이야기는 디즈니 영화에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누구도 신데렐라가 고부갈등을 겪는 것을 목격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랑이 시작하는 그 짧은 순간입니다. 그 짧은 순간은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가장 로맨틱한 영화가 있습니다. 매력적인 젊은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하룻밤 사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입니다. 파리에 가는 여자와 비엔나로 가는 남자가 기차의 같은 칸에서 만납니다. 두 사람은 큰 목소리로 싸우는 커플을 피해서 식당칸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남자와 여자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대화가 서로 잘 맞습니다. 마침, 창밖으로는 아름다운 유럽의 자연 풍경이 지나가고 있군요. 기차는 빠르게 지나가 남자의 목적지인 비엔나에 금세 도착합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침까지 자신과 비엔나 여행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여자는 크게 미소 지으며 제안을 수락합니다. 그 둘은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함께 비엔나 곳곳을 돌아다니기로 합니다.

 이 영화의 대단한 점은 두 남녀 주인공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문제부터 사랑, 죽음, 인간관계까지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를 갖고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 둘의 대화를 훔쳐 들으면서도 비엔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하지만 비엔나 시내의 풍경은 두 사람의 배경으로써만 기능합니다. 두 사람의 로맨스와 아름다운 풍경의 적절한 배합은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듭니다. 여행과 말이 잘 통하는 젊은 두 사람. 사랑에 빠지기 충분합니다.

 <비포 선라이즈>는 철저하게 로맨스의 장애물을 배제합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지라는 공간 특성상 현실의 문제를 느낄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우연성은 로맨스에 힘을 보태줍니다. 유럽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공간감 역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두 사람은 오늘 밤을 완벽한 기억으로 남기고자, 전화번호도 주소도 교환하지 않고 다시는 만나지 않기로 합니다. 관계가 맺어지는 순간부터 숨어있던 문제가 하나둘씩 두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역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뒤에, 각자 가야 할 길로 떠나면서 가장 완벽한 순간은 깨트리지 않고 끝납니다. 대신 관객들은 감당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여운을 영화의 마지막에 느끼게 됩니다. 아니, 영화가 끝나면 비로소 관객의 여운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두 사람이 새벽에 같이 누워 와인을 마시던 잔디밭에 홀로 남아 굴러다니는 와인병이나, 기차 안에서 주변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싸우는 커플처럼 불편한 일들이 생겨납니다. <How I met your mother> 시즌 1 13화에서 주인공 테드 모즈비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한 여자를 만납니다. 그 둘은 이십 대 후반으로 오래 살았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연애의 불편함을 충분히 겪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정말 멋진 밤을 함께 보냈지만, 완벽한 순간을 위해 둘은 전화번호 교환도 하지 않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결국 테드는 그녀를 다시 찾아내죠.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랑에 빠지는 순간 뒤에 찾아올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완벽한 순간으로 남겨두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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