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리뷰 - 가족에 대한 모든 것(2)
오늘도 어느 날

<어느 가족> 리뷰 - 가족에 대한 모든 것(2)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1. 줄거리
  2. 반석과 굴러온 돌
  3. 거짓 존재들

 

줄거리

 

이 글은 지난 리뷰에서 이어집니다. 이전 글을 참고하시면 리뷰를 이해는데 도움이 됩니다.

줄거리는 이전 리뷰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 가족> 리뷰(1) - 가족에 대한 모든 것

※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줄거리 우리는 왜 이들의 변호를 자처하나요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줄거리 시놉시스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

han-oneday.tistory.com

 

반석과 굴러온 돌

 

 지난 리뷰에서는 왜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이입하는지와 큰 틀 안에서 영화의 주제와 구조를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영화를 좀 더 세밀히 들여다볼까 합니다. <어느 가족>의 주인공을 단 한 명으로 추린다면 누구일까요? 영화의 막바지에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쇼타가 주인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쇼타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떤 큰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내기에는 부족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주변에 조력자 또는 성장을 돕는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영화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시바타 하츠에와 린

 

"집에 돌아간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선택받은 건가, 우리가?"
"보통은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근데, 스스로 선택하는 편이 더 강하지 않겠어?"
"뭐가?"
 "그러니까... 유대... 정 같은 거."
"나도 널 선택했지."

 

 영화의 초반부에 린은 함께 살아갈 가족을 선택합니다. 린의 실종이 매체에 알려지자 오사무는 린을 원래 부모에게 돌려보내려 하고 노부요는 린을 데리고 있으려 합니다. 이들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에게 어떤 가족을 택할지 선택지를 주었습니다. 린이 부인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아빠와 자신을 괴롭히고 무시하는 엄마를 버리고 시바타 가족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혈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선택을 내리는 때마다 영화의 주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린보다 앞서 오사무와 노부요를 선택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바로 할머니 시바타 하츠에입니다. 린이 시바타 가족을 선택한 후에 아이들과 산책하며 두 사람은 위의 대화를 나눕니다. 할머니가 이 가족의 시작점이었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장기 중에 하나는 서사의 바탕이 되는 배경을 언제나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보여주지 않습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 이야기의 원동력인 큰아들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은 항상 프레임 밖에서 존재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배경 이야기를 간접화법을 사용하는 대사로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그 표현 방식은 일상생활의 대화와 비슷합니다. A를 말하고 있다고 그 말의 뜻이 A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보다 보면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기시감이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하츠에 할머니는 시바타 가족의 기둥입니다. 모두 가명을 사용하지만 하츠에 할머니의 성을 따라 쓰는 것으로 알 수 있죠. 또 실질적인 가장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노동을 하지는 않지만 시바타 가족의 주 수입원은 할머니의 연금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하츠에 할머니가 오사무 노부요 부부도 아키도 선택했음이 밝혀집니다. 이 가족은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전적으로 할머니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린이 등장합니다. 린은 말하자면 굴러온 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집을 받치고 있던 반석을 작은 돌이 툭 치어 밀어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린이 시바타 집에 처음으로 찾아왔을 때 발톱을 현관 밖으로 버린 할머니는 집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린이 이가 빠진 날 공교롭게도 하츠에 할머니가 돌아가셨군요. 발톱과 치아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해 보입니다. 쇼타는 이를 천장 위로 던지며 건강한 새로운 이가 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반석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너무나 작은 조약돌이었습니다. 조약돌 위에 지어진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겠네요.

 하츠에 할머니는 가족 구성원들의 비밀을 봉인해둔 비석과도 같습니다. 유일하게 이들이 가진 비밀 전부를 알고 있고 이들이 만날 미래를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오사무와 노부요의 과거도 사치의 가족의 비밀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비석이 사라지면서 이 비밀들이 하나씩 풀려나고, 풀려난 비밀들은 가족을 해체시키는 폭약이었습니다. 선택받은 오사무 노부요 부부와 사키는 할머니가 아무도 몰래 죽고 싶지 않다고 했던 마지막 희망을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가짜 가족의 한계는 이미 드러난 셈입니다.

 

  오사무와 노부요

 

 오사무는 인간적이고 정이 많습니다. 그는 과거에 차에 방치된 쇼타를 구출한 적이 있었고 이번에 린을 구해온 것도 오사무입니다. 그는 아이들의 시선을 맞춰 대화할 줄 알고 아이들과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아이들에게 신뢰를 얻고 친밀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는 쇼타와 린에게 아빠라고 불리길 원합니다. 쇼타에게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권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희망사항으로 여길 뿐 선택은 아이의 몫으로 남깁니다.

  그는 시바타 가족 중에서 가장 가정적이고 아이들과 가까운 존재처럼 그려집니다. 하지만 오사무에게는 아이들보다는 자신의 생존이 우선입니다. 가족을 지키기에 그는 너무나 유약하고 이기적입니다. 그는 쇼타에게 가게에 진열된 물건은 누군가 구입하기 전에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또 린이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 린을 친부모에게 돌려보내려 한 것도 그였습니다. 결말부에 이르러 결국 그는 쇼타마저 버리려고 했군요.

 노부요는 오사무에 비해 까칠한 것 같습니다. 린이 집에 처음 왔을 때 그녀는 린을 반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내면은 무척 따뜻한 사람이었죠. 린의 부모가 가정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고 린을 다시 데려온 것은 노부요였습니다. 오사무가 린을 친부모에게 돌려보내려 할 때 린에게 집에 남으라고 얘기한 것도 노부요였습니다. 그녀는 가족을 원합니다. 린이 남기로 결정했을 때 조심스럽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녀는 가족을 지켜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해고되면서까지 말이죠.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자 쇼타를 포기하려 들었습니다.

 노부요의 욕망의 동기가 취조실에서 밝혀집니다. 그녀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가족을 갖고 싶어 했었군요. 이 취조 장면에서 노부요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는 엄청난 표정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는 이 과정 중에 모든 범죄 사실을 혼자 뒤집어쓰고 감옥에 갑니다. 모든 비밀이 밝혀졌을 때 결국 희생하는 것은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 중을 겪고 난 뒤에 자신의 비겁함을 알게 되었고 쇼타에게 친부모를 찾아낼 수 있는 선택지를 쥐여줍니다.

 

  인간의 양면성과 가족의 양면성

 

 이처럼 인간은 모두 양면성을 지녔습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통념적으로 가족은 따뜻하고 친근하고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무작정 사이가 좋고 화목하기만 가정은 없습니다. 최광현 교수가 저술한 『가족의 두 얼굴』에서 가족이 가진 어둠에 대해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또 다른 장기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면이 있습니다. 그건 아주 사소한 사건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할 뿐이죠. <걸어도 걸어도>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아들 대신 살아남은 청년을 정신적으로 고문합니다. <어느 가족>에서도 기키 키린은 인간의 양면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자신을 버린 남편과 새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부부를 찾아간 하츠에 할머니는 부부를 매우 품위 있게 대합니다. 부부가 돈 봉투를 손에 쥐여줄 때는 예의 있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고 그다음 바로 이어지는 장면이 대단합니다.

 하츠에 할머니는 부부의 집을 나오자마자 봉투를 열어보고는 "뭐야, 또 3만 엔이네."라며 액수에 불평합니다. 관객은 인간이 가진 대조적인 양 측면을 동시에 목격합니다. 이 극명한 차이는 관객을 당혹하게 합니다. 인간이 들키고 싶지 않은 측면을 그대로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거짓 존재들 

 

 시바타 가족은 가짜 가족입니다.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거짓 되어있습니다. 하츠에 할머니를 찾아온 복지사는 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한 가짜 독거노인입니다. 오사무는 가명입니다. 실제 이름은 쇼타였습니다. 자기의 신분을 속이고 사는 무적자였군요. 노부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두 사람은 노부요의 전남편을 같이 살인하고 부부 행세를 하고 다니는 가짜 부부였습니다. 아키는 유흥업소에서 동생의 이름을 빌려 가짜 사랑을 나눕니다. 쇼타가 사용하는 낚싯대의 미끼는 플라스틱과 나무로 만든 가짜 미끼군요. 린은 무려 가짜 이름을 2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신분은 가짜일지 언정 거짓 감정을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오사무 노부요 부부는 가짜 부부이지만 진짜 부부보다도 진실한 사랑을 나누었고 사키는 업소에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거짓 위에 세워진 진실은 너무나 쉽게 한순간에 무너졌지만 그들이 나누었던 유대가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거짓이 벗겨졌을 때 그들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마치 허물을 벗어야 진짜 매미가 보이듯이 말이죠.

 이들의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는 장치로서 불꽃놀이가 사용되었습니다. 시바타 가족은 다 같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여름 밤하늘 어디선가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꽤 지척에서 불꽃놀이를 하는지 소리가 큽니다. 펑펑. 터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도 시바타 집에서는 불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바타 가족 구성원들은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알록달록 수놓는 불꽃을 상상합니다. 마치 동굴 속 사람이 그림자를 보고 진짜 세상을 상상하듯이.

 이들은 가짜 가족 속에서 진짜 가족을 꿈꿉니다. 소리만 들으며 진짜 불꽃놀이를 상상하는 것처럼요. 이들의 진짜 가족은 모두 불행했습니다. 노부요는 폭력을 일삼는 전남편과의 부부 생활이 불행했습니다. 사키의 친부모님은 사키의 동생만 아끼며 집을 나간 사키는 유학 간 것으로 말하고 다닙니다. 쇼타는 차 안에 홀로 방치되어 있었고 린은 친부모에게서 학대를 당했습니다.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진짜 가족을 꿈꾸던 이들은 결국 불꽃놀이가 끝날 때까지 불꽃을 못 본 것처럼 진짜 가족을 이룰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쇼타와 오사무가 함께 만든 눈사람처럼 녹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눈은 녹아도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눈은 물이 되었다가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갑니다. 녹아버린 눈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공기 중에 떠다니며 우리 주변을 머무를 것입니다. 단 한 번도 오사무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던 쇼타가 버스에서 아빠라고 부른 것처럼, 그들은 진짜 가족이었습니다. 결국 가족은 해체되었지만 이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었던 기억은 내면에 계속 머물러 있겠지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다른 영화]

 

 

<걸어도 걸어도> 리뷰 -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

※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줄거리 가족이라는 이유로 굴레 줄거리 시놉시스 그 해 여름,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해 여름, 우리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습�

han-oneday.tistory.com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리뷰 -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굽이길을 걷는 것

※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차] 줄거리 본성과 양육 아버지가 된다는 것 줄거리 시놉시스 그날 이후, 내가 알던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신을 닮은 똑똑한 아들, 그리고 사

han-oneday.tistory.com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오늘도 어느날

하노(hano)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