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리뷰 - 죽음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오늘도 어느 날

<아무르> 리뷰 - 죽음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by 하노(hano)

※  주관적 해석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소개하는 또 다른 사랑의 형태.


[목차]

 

  1. 줄거리
  2. 안느에게 찾아온 불행
  3. 조르주의 사랑

 

줄거리

  시놉시스

 행복하고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던 음악가 출신의 노부부 조르주와 안느. 어느 날 아내 안느가 갑자기 마비 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들의 삶은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남편 조르주는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출처: 다음 영화)

  자세한 줄거리 

 은퇴한 음악가 노부부인 조르주와 안느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안느의 제자였던 알렉상드르의 연주회에 간다. 부부는 옛 제자의 장성한 모습을 보고 감격한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억지로 침입하려 한 듯 현관과 맞닿아 있는 문의 문고리가 상해있었다. 안느는 도둑이 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한다. 안느가 도둑이 왜 우리 집에 들었을까 의문을 가지자 조르주는 도둑은 그냥 아무 집이나 터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다음날 아침, 조르주와 안느는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던 중 안느의 상태에 이상이 생겼다. 조르주가 아무리 부르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목을 닦아봐도 안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넋이 나가 눈에 초점이 없었다. 안느는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조르주가 그녀를 부르던 기억이 없다. 안느의 반대에도 조르주는 의사를 부른다. 의사는 안느의 경동맥이 막혔다며 간단한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패할 확률은 5%밖에 되지 않는다던 수술이 실패했다. 안느는 후유증으로 오른쪽 신체가 마비됐다. 안느의 뜻에 따라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온다. 퇴원한 안느는 조르주에게 다시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두 사람은 안느의 고통을 함께 감내하기로 한다. 안느는 자립심을 보였다. 혼자서 책을 읽고 식사했다. 안느는 되도록 조르주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해냈다. 두 사람은 옛이야기도 나누며 조금은 불편하지만 이전과 다르지 않은 즐거운 날들을 보낸다.

 피에르의 장례식에 혼자 다녀온 조르주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안느는 비가 내리는 창문 아래 넘어져 있었다.  안느는 조르주에게 장례식은 어땠는지 묻는다. 조르주는 안느에게 장례식은 엉망이었다며 고인에 대한 예의를 보이지 않던 조문객들의 이야기를 해준다. 이야기를 듣던 안느는 갑작스럽게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조르주는 자신은 힘들지 않다고 응수한다.

 안느의 옛 제자인 알렉상드르가 갑작스럽게 두 사람의 집을 방문했다. 소식을 듣지 못한 알렉상드르는 반신불수자가 된  스승을 보고 놀라고 걱정을 내비친다. 이후로 부부의 딸 에바와 사위가 찾아오기도 한다. 제자와 딸의 방문 사이에 안느의 몸 상태는 급격하게 악화된다. 그녀는 배변을 가리지 못하고 죽 같은 유동식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다. 안느의 몸이 나빠지고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진 조르주는 간호사를 고용한다.

 하지만 간호사의 사무적이고 억압적인 태도에 조르주는 간호사를 바로 해고한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안느의 상황은 나빠지기만 하고 조르주가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에바가 혼자서 찾아왔다. 조르주는 안느의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에바를 거실로 안내했다. 에바는 뒤늦게 안느의 방문을 잠가두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조르주에게 화를 낸다.

 영화의 막바지에 조르주는 안느의 얼굴을 베개로 있는 힘껏 눌러 살인한다. 조르주는 꽃과 테이프를 사 온 뒤 꽃을 안느 주변에 뿌려주고 집안 창틀과 문을 테이프로 막은 뒤 가스를 틀고 자살한다. 영화는 죽은 두 사람이 발견된 뒤, 모든 문이 활짝 열린 두 사람의 집에 찾아온 딸의 에바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뒤 끝난다.

 

안느에게 찾아온 불행

  죽음은 도둑처럼 찾아온다

 <아무르>는 불어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는 결국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생각하는 죽음은 어떤 것일까. 

 영화의 오프닝 이후 이어지는 극장 장면은 매우 독특하다. 카메라가 무대 위를 보지 않고 관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주인공인 조르주와 안느 부부는 관객석 중앙에서 조금 왼쪽에 앉아 있다. 주인공의 등장 장면은 주인공의 성격과 영화의 내용을 암시하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주인공을 감춰놓는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 부부를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수많은 관객 사이 속에 주인공을 배치한 것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안느는 도둑이 왜 우리 집에 왔을까 의문을 가진다. 조르주는 이렇게 대답한다.

 "도둑은 그냥 아무 집이나 터는 거니까."

  그렇다. 죽음은 도둑처럼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죽음은 집 밖에서 집으로 쳐들어오는 침입자 같은 것이어서 모두가 이 앞에 무력하다. 조르주는 다음날 아침 일찍 문 수리공과 전화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침입자는 집안에 들어온 모양이다. 불안감에 잠을 설치던 안느는 몸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이후로 카메라는 집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집안에서 이뤄진다. 집은 두 부부를 상징하는 장소다. 문은 침입자가 넘나드는 매개로 작동한다.

 

  안느에게 죽음이란

 안느는 조르주에게 죽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환자가 급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충격을 받아 확 김에 한 말이나 남편의 속내를 확인해보려고 던져보는 말이 아니다. 안느가 죽고 싶다는 것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남편에게 지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노년기에 든 안느에게 두려운 것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었다.

 부부에게 방문객이 찾아올 때마다 안느의 두려움이 구체화된다. 안느는 알렉상드르에게 언제나 스승이고 싶었다. 비록 자신이 반신불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길 바랬다. 알렉상드르가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하자 안느가 화제를 돌린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자가 본인의 CD와 함께 보내온 엽서 한 장에 안느의 소망은 간단히 무너져버렸다. 알렉상드르의 걱정이 담긴 엽서의 수신인은 스승이 아닌 환자였다. 

 이 엽서를 받은 이후 안느는 급격히 자신을 상실해간다. 그녀는 몸의 통제권을 잃고 자기 자신마저 잃어간다. 그녀가 그녀 자신으로 있던 마지막 순간 그녀가 한 말이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순간 인생을 다시 느껴보고 회상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는 뜬금없이 사진첩을 본다. 사진첩에 노부부의 일생이 파로라마처럼 펼쳐진다. 이제 곧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예감한 것일까. 안느는 마지막으로 인생에 대한 말을 남긴다.

 "아름다워."
 "뭐가?"
 "인생이."
 "참 긴 것 같아. 인생은 참 길어."

 

조르주의 사랑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

 조르주는 안느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조르주도 죽음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것이 악몽으로 발현된다. 알렉상드르의 방문 이후 조르주는 악몽을 꾼다. 악몽 속에서 누군가 집 벨을 누른다. 조르주가 문을 열어보지만 아무도 없다. 조르주는 복도로 나가본다. 복도에는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조르주가 이상하게 여기는 순간 손이 나타나 그의 입과 코를 막는다.

 그의 꿈에는 죽음이 가득하다. 조르주는 삶과 죽음의 경계인 문을 넘어간다. 그 문 넘어에는 물이 고여있다. 물은 문과 의미가 동일하다. 동서를 가리지 않고 물은 전통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의미했다. 동양에서 죽으면 영혼은 삼도천을 넘어 저승으로 가고 서양에서는 스틱스 강이 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죽음들의 상징들 속에 마침내 죽음의 손길이 직접적으로 그에게 닥치고 그는 악몽에서 깨어난다.

 안느가 자기 상실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면 조르주의 두려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대상으로 삼는 것일까. 그가 두려워한 것은 안느가 두려워했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안느를 바라보며 그는 저 여자가 내가 사랑했던 나의 아내가 맞는지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자신의 삶을 좀먹어가는 죽음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비둘기

 조르주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편 침입자로부터 안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해가 진 짙은 저녁 열린 창문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온다. 조르주는 곧바로 비둘기를 내쫓는다. 창문도 문과 마찬가지로 침입자가 통하는 출입구로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비둘기는 도둑처럼 불청객, 죽음을 뜻한다. 조르주가 비둘기를 내쫓는 행위는 그가 안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조르주가 지키고자 한 것은 안느의 생명만이 아니다. 조르주는 항상 안느의 의사에 따랐다. 그 결정이 아무리 험난 한 것이라도 조르주는 안느의 결정에 따르기로 한다. 그는 수술 직후 퇴원하고 싶다는 안느의 결정에 따랐고 마침내 안느와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다시는 병원에 입원시키지 말아 줘."

 조르주는 이 약속을 지킨다. 노인의 몸으로 간병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그녀의 몸에 차도가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조르주는 그녀를 정성껏 간호한다. 의료인들도 가족들도 너무 버거운 일이라며 반대하지만 그는 안나가 집에 머무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랬던 그가 갑작스럽게 안느의 숨통을 막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갑작스럽게 변심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그는 혼자 너무 많은 것들은 감당해왔다. 그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일이다. 인생에 대한 안느의 감상처럼 그의 행동도 모순되어 있다.

 

  조르주에게 안느의 죽음이란

 다시 비둘기가 집에 들어왔다. 이번에 그는 비둘기를 쫓아내지 않는다. 그는 창문을 닫고 비둘기를 잡으려 한다. 그는 노쇠하여 느릿한 몸짓으로 마침내 비둘기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는 잡은 비둘기를 조심스럽게 안고 의자에 앉는다. 그는 비둘기를 쓰다듬는다. 그는 편지에 비둘기를 잡았지만 놓아주었다고 적었다.

 비둘기에 대한 행동 변화는 명백히 안느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비둘기가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비둘기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조루주가 죽음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죽음을 수용하고 안느의 뒤를 따른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집 안에 비둘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죽음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 해석에서도 비둘기는 죽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조르주의 죽음이 아닌 안느의 죽음이다. 조르주가 비둘기를 안는 행위는 역시 죽음을 수용하는 것이지만 다가올 죽음이 아닌 이미 죽음이 왔음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안느의 신체는 살아있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르주 안느의 죽음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조르주에게 있어 안느의 죽음이란 신체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다시 그의 살인으로 돌아가 보자. 그의 살인 행위는 갑작스러운 충동에 의한 것인가? 깨달음에 의해 야기된 것인가? 가장 확실한 것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이것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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