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살인, 154인의 고백』/『간병 살인』,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
오늘도 어느 날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간병 살인』,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비극

by 하노(hano)

 

 

인천지법 형사12부(부장 송현경)는 1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70·여)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9월 24일 낮 12시 40분쯤 인천시 계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딸 B(당시 48세)씨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남편이 외출한 사이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4년 딸 B씨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혼자서는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어머니 A씨는 딸의 대소변을 받는 등 15년간 보살폈다.

오랜 병간호 생활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A씨는 범행 전 가족들에게 “딸을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면서 고통을 토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뇌경색 딸 15년간 간병하다 살해한 70대 노모 집행유예 선처, 서울신문,
2020년 1월 17일]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117500124#csidxb5b129470c2504b941a2ef4b1b50854 

 


[목차]

 

  1. 줄거리
  2.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비극
  3. 우리의 미래

 

줄거리

 말 그대로 100세 시대에 도달했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섰고 이제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인지가 문제가 된 시대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초고령화 사회라는 용어가 익숙해진 지 오래다. 고령화에 따른 사회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고령화로 발생하는 문제들은 이제 시작일 뿐 곧 다가올 문제가 산더미다.

 우리나라와 이웃한 국가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고령화 속도가 20년 빠르다고 한다. 일본은 이미 고령화로 인한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이 현재 처한 문제점들을 보면 우리가 앞으로 어떤 문제에 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마이니치 신문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기획보도를 연재했다. 보도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살인사건 그것도 혈육을 살인한 존속살인 사건의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신문에 실었다. 패륜적인 살인을 저지른 이들의 이야기를, 그것도 그들을 두둔하는 기사가 어떻게 신문에 실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을 간병하는 간병인이었다. 다년간 지극정성으로 간병하였지만 오랜 시간의 간병은 그들의 마음에 병을 심었다. 그들은 이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의 실수로 가족을 살인하고 말았다. 재판부도 이들을 비난하지는 못했다. 이 사람들 중 대다수는 감형을 받았고 그중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감춰진 이야기를 실은 기획보도를 모아 편집한 책이 2018년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된 『간병 살인』(부제: 벼랑 끝에 몰린 가족의 고백)이다.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살인사건을 따로 구분하여 통계하고 있다.

 이로부터 1년이 지나 2019년 7월,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이 출간되었다. 2018년 9월 3일부터 12일까지 8회에 걸쳐 서울신문이 연재한 기획 기사를 내용을 추가하고 편집한 것이다. 한국에서 2006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총 178건의 간병 살인 또는 자살사건이 발생하였고 총 2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장부터 4장까지는 각각 노-노 간병인, 다중 간병인, 폭력에 노출된 간병인 그리고 장애인 간병인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5장에서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진단하고 6장에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7장에서는 현재 간병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지막 8장에서 한국 사회가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해 논의한다.

 

가족이 가족을 죽이는 비극

 혹자는 간병 살인의 가해자들을 비난할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같이 살아야지 가족을 죽일 수가 있느냐고. 이러한 생각은 그들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 대부분의 간병 살인이 발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유교적 사상을 바탕에 둔 한국 사회에서는 아픈 가족은 가족이 보살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책임감 혹은 부채감 때문에 환자를 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손에 가족을 맡기는 것을 주저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책임감과 환자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마음에 병을 얻기 쉽다.

 간병해보지 않은 사람을 모른다. 간병은 견디는 일이다. 몸이 병든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지고 예민해진다. 그들은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먹는 것부터 입는 옷까지 까탈스럽게 군다. 폭력의 휘두르는 경우도 많다. 간병인은 중노동을 하면서 환자의 폭언과 폭력에 방치된다. 실제로 서울신문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간병인들 중 대부분이 중증 이상의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익숙지 않은 상황에 처한 2년 미만의 간병 기간을 가진 간병인과 오랜 시간 간병에 시달려온 장기 간병인들의 경우 그 비율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 대부분의 간병인이 독박 간병을 한다는 것도 큰 문제다. 이들은 혼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노동을 감당한다.

 또한 간병인 중 상당수가 수면 부족을 호소한다.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의 경우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몸을 돌려줘야 한다. 또 불면증이나 수면장애를 가진 환자들도 많다. 간병은 저녁에도 예외는 없다. 간병인들은 저녁에도 잠을 거르며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 우울증과 수면장애, 극심한 스트레스로 간병인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더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 악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치료비용이라는 지출이 생기는 데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집에 머무르며 환자를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경제 활동 인원이 줄어든다. 수익을 줄고 지출을 점점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가족들은 극도의 불안감과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일한 경제활동 구성원이 실직하자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독박 중노동에 폭언 폭력에 노출된 상황과 천천히 마음을 좀먹어가는 우울증 그리고 점차 나빠지는 가계 제정 상황에서 간병인은 희망을 볼 수 없다. 길어지는 수명에 따라 간병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그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희망 없이 반복되는 악재 속에 간병인의 마음속에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화약이 쌓여간다. 이들은 환자의 폭력 또는 폭언, 실직과 우울증 악화 등의 사건이 방아쇠가 되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케이스가 대다수이다. 간병 살인의 가해자들은 범행 전에 한계에 달했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의 호소를 들었더라면 사건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간병 살인의 가해자들은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간병을 자처한 사람들이다. 이 중에는 25년 넘도록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본 사람들도 포함되어있다. 25년간 보살핀 가족을 살해하는 이의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가해자들은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지옥 같은 날을 살아간다. 이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면 가족이 가족을 살인하는 비극은 반복해서 일어날 것이다.

 

우리 미래

 노인 10명 중 1명은 치매를 앓는다. 치매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상행동증상은 별도의 관리가 필요하다. 치매 환자 중 80퍼센트에서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다. 즉, 치매 환자 중 80퍼센트는 의심, 망상 폭력, 우울증을 겪는다는 것이다. 이상행동증상은 치매 치료와 별개로 조현병 치료가 병행되어야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를 전달하는 기관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것은 치매센터만이 아니다. 요양시설도 부족하다. 포천, 동두천을 비롯한 경기 북부지역과 서울에 얼마나 많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있는데 시설이 부족하다고 하느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요양시설의 현실을 모르는 말이다. 요양시설의 대다수는 민간 운영 시설이다. 요양시설에 대한 규정이 느슨한 탓에 서비스의 질이 수준 이하인 시설이 대다수이다. 또한 시설 간 편차가 매우 크다. 2015년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평가한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에 따르면 1~5등급으로 분류된 요양시설 중 1등급 시설은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다. 전국 202개의 1등급 병원 중 76개가 수도권에 23개가 부산에 있다. 강원도에는 1등급 시설이 0개였다.

 요양보소사에 대한 처우 문제도 있다. 요양보호사의 역할이 커지는 반면에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변화하지 않고 있다. 강도 높은 노동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임금과 기피 직업이라는 인식이 전문적인 요양보호사 배출을 막고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를 받으며 불안정한 일자리를 갖고 있다.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상황이 낫다. 일본은 지역마다 케어매니저들이 있어 개호보험 대상자들을 한 달에 한 번꼴로 방문한다. 지역별로 돌봄 센터도 갖춰져 있다. 오전이나 오후까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이케어 서비스도 잘 구축되어 있다. 그럼에도 일본 사외에서도 간병살인 사건을 비롯한 간병 관련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의 경우 간병살인의 가해자 중  도움이 있었더라면 혹은 도움을 청했더라면 달라졌을 거라는 아쉬움 또는 후회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간병을 '그림자 노동'으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림자 노동은 당연한 의무로 여겨져 대가 없이 이루어지는 노동을 의미한다. 간병을 환자 가족만의 책임으로 여기는 태도가 여러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은 환자 가족에게 책임감을 씌우고 그들이 환자를 책임지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도움은 사회적 책임이다. 간병은 우리 사회가 환자 가족들과 함께 감당해야 하는 문제다. 간병 문제는 빈부와 연령을 따지지 않고 발생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주요 선진국은 가족 간병을 사회가 할 일을 대신한느 '노동'으로 인정하고 '보답을 한다.(『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e북 기준 118쪽) 영국과 독일은 주당 특정 시간 이상 간병하면 수당을 지급하고 국민연금 보호료를 대신 대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간병인들의 휴식이 보장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연 90일까지 사용가능한 가족돌봄휴직제도가 있지만 무급이 원칙인 데다 가족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휴가가 없다. 가족 간병인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것이 휴식 여가 활동의 부족이다. 이들의 생활을 보면 부족이 아니라 아예 휴식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가족 간병인은 가장 중요한 지지대다. 이 지지대가 무너지면 환자도 위험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인의 자기 돌봄이 가장 중요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면제를 먹여 잠든 딸을 살해했다”며 “가장 존엄한 가치인 생명을 빼앗는 살인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면서 “15년간 거동이 어려운 피해자를 돌보며 상당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고 자신이 죽으면 피해자를 간호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같이 죽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또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할 만한 시설이나 제도적 뒷받침이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의 비극을 오롯이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뇌경색 딸 15년간 간병하다 살해한 70대 노모 집행유예 선처, 서울신문, 2020년 1월 17일] 

 

 간병은 다같이 책임져야 할 문제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간병에 대한 교육이 시행되고 요양시설의 확충과 함께 요양병원의 실태 조사도 진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간병인들의 휴식 보장과 경제적 도움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시행되지 않는다면 민간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없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접근 방법이 될 것이다.

 


[간병 살인을 다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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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 리뷰 - 죽음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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