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 삶의 변곡점에 있는 이들에게
오늘도 어느 날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 삶의 변곡점에 있는 이들에게

by 하노(hano)

 

 평소에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데 지난주에 우연히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다음 주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기에 미리 책을 읽어보고 느낀 점을 비교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책을 읽어봤다.

줄거리

 홀든 코필드는 뉴욕 근교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 펜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에 불만을 품고 학교 생활을 태만하게 한다. 결국 그는 5과목 중 4과목에 낙제점을 받아 퇴학당한다. 홀든은 이야기를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정확히는 부모님이 이 소식을 듣고 화내는 것을 피하려고) 수요일까지는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기숙사를 떠난다. 기숙사를 떠나온 홀든이 3일 간 겪는 우여곡절에 대한 내용이 주된 줄거리이다.

 

홀든 코필드

 홀든의 여동생 피비는 예리한 구석이 있다. 피니는 홀든을 꿰뚫어보고 홀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오빠는 모든 게 다 싫은거지? 좋아하는 거 한 가지만 말해봐.'

 홀든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피비의 말대로 홀든은 모든 것을 혐오했다. 외롭다며 계속 사람을 만나지만 금방 그들에게 질리고 온갖 불만을 퍼붓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결국 모든 사람들이 홀든을 떠난다.

 홀든에게도 소중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는 여동생 피비와 어린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은 남동생 샐리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또 어린아이들의 잡담이 적힌 노트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학교 벽에 욕설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상처를 입을까 봐 낙서를 지우기도 한다.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229-230쪽)

 그가 밝힌 포부에서도 어린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느껴진다. 요약하자면 홀든 코필드는 어린이들을 제외한 세상 전부에 불만이 가득한 소년인 셈이다. 그는 왜 이렇게 불만이 많고 어린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걸까?

중2병

 한국과 일본에는 홀든 코필드를 표현하기 적합한 표현이 있다. 중2병. 나는 중2병이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정의 내리기 위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이 단어로 개인에 대한 이해는 사라지고 치기 어리고 자의식으로 가득 찬 어린애라는 이미지만 남는다. 하지만 홀든 코필드는 이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얘는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정말 하루종일 불평을 한다. 소설 내용 중 절반 이상이 홀든의 불만이 차지한다. 읽다 보면 지긋지긋하고 짜증이 날 정도다. 홀든은 이 세상에서 정상적인 것은 나 하나뿐이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다 잘 못됐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거기다가 잘난 체는 어찌나하는지 모든 영화는 허접한 것이고 배우 중에 좋은 배우란 없다고 생각한다. 또 클럽에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더러 기술은 뛰어나지만 너무 젠체한다고 생각하고 진짜 좋은 연주는 따로 있다고 여긴다. 이 세상에는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또 그는 가지지 않은 것을 마치 이미 손에 쥔 듯이 행동한다. 그런데 무척이나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다. 그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들 자신을 어른으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16살 밖에 안 됐으면서 클럽이나 바에서 당당하게 술을 주문하고 나이를 물으면 도리여 화를 낸다. 그는 수없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세우고 이미 그 계획이 이루어진 듯이 행동하지만 그 계획을 수시로 뒤집는다.

호밀밭의 파수꾼

 그가 되고 싶다는 호밀밭의 파수꾼은 결국 피터팬 같은 존재다. 영원히 어린아이들만 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을 위험으로부터 수호하는 존재. 그는 어린애와 어른 사이에 있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어린아이는 이제 자신이 떠나보내야 할 시기이고 그는 이제 새로 거듭나야 하는데 새로 거듭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오리와 박물관

오리는 어디로 가나요?

홀든은 작중 두번이나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센트럴 파크 연못에 사는 오리가 연못이 얼면 어디로 가냐는 질문이다. 

 "오리들이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있잖아요? 봄에 말이에요. 그럼 겨울이 되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113쪽)

  홀든은 이 질문을 택시 기사에게 한다. 택시 기사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일축한다. 홀든은 다음번에 다른 택시에 올라타고 택시 기사가 아까 전 기사보다는 좋은 대화 상대라고 생각하고 똑같은 질문을 또 한다. 이번 기사도 역시 오리가 무슨 상관이냐며 성질을 낸다. 하지만 그는 정말 좋은 대화 상대였던 걸까? 어조는 높지만 질문에 대한 대꾸를 한다.

 "물고기들은 아무데도 가지 않아요. 항상 그 자리에 있지. 그러니까 저 연못 속에 그대로 있을 거요." (113쪽)

 그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오리는 어디론가 사라지지만 물고기는 연못이 얼더라도 그대로 있다는 말이다. 소설은 이 대화로 상당한 분량을 사용한다. 이 정도로 분량을 차지하면 독자는 여기에 무슨 의미가 숨겨져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오리와 연못, 물고기에는 무언가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연못이 어는 겨울은 홀든이 맞이하지 싫은 어른의 시기를 의미한다. 겨울이 찾아오면 떠나는 것은 어린 아이가 가진 순수한 마음이다. 오리가 떠나가듯 어른이 되면 순수함은 떠나간다. 그렇다면 연못이 얼더라도 연못에 남아있는 물고기는 무슨 의미일까? 홀든이 어른이 되더라도 그대로 남아있을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박물관

이러한 홀든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은 또 다시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박물관에서 가장 좋은 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기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만 번을 보더라도 에스키모는 여전히 물고기 두 마리를 낚은 채 계속 낚시를 하고 있을 것이고, 새는 여전히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슴은 여전히 멋진 뿔과 날씬한 다리를 보여 주며 물을 마시고 있을 것이고, 젖가슴이 드러난 인디언 여자는 계속 담요를 짜고 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164쪽)

 홀든은 초등생 시절에 토요일마다 견학했던 박물관에 들어가 초등학생 시절을 추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여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165쪽)

 

사람은 끊임 없이 변화한다

 홀든은 사람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 같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가 이야기하던 대상이 정신병원의 정신과 의사들이었음이 밝혀진다. 청소년 시기에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신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크게 변화하는데 그 속도는 급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 그 속도를 따라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변화하는지도 모르는 채 변화한다.

 나도 변화하는 나 자신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유독 교육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고 순수함을 잃기 싫어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아침에 등교할 때면 새벽 공기 냄새 맡는 것을 좋아했다. 밤새 이슬을 머금은 풀잎들에서 축축한 습기 냄새가 났다. 특히 안개가 진하게 낀 날과 보슬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했다. 공기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공기 냄새가 나질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내게 변화한다는 건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급전직하를 느낀 나는 무언가를 잃기 싫었다. 이는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당시에 나는 <필리핀 교실혁명, <학교 개조론>, <대학의 몰락>, <입시전쟁 잔혹사> 같은 책을 읽었다. 마치 홀튼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서 어린아이들을 지키고 싶어했던 것처럼 나도 부조리한 입시 지옥에 처한 10대를 지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사람은 변화하는 법이고 변화는 익숙해지는 법이다. 이 필연적인 법칙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영원히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졸업해야만 하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무언가에 졸업할 시기가 찾아오고 졸업해야만 한다. J.D. 샐린저는 어른을 동경하지만 어른이 되기는 두려운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있는 이들에게 혹은 삶의 변곡점에서 변화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이게 메시지를 던진다.

 변화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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