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오늘도 어느 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by 하노(hano)

 

 고등학생 시절 친구가 인생 영화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뽑았었다. 그때부터 언젠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그 뒤로 항상 기억 한편에 자리 잡혀 있었다. 일종의 부채감이 생겼고 그럴수록 오히려 영화를 보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었고 강의 중에 이 영화 혹은 원작 소설을 언급한 교수님들이 계셨다. 부채감은 더욱 커졌다. 화룡점정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유정 작가가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 대한 기억을 회상했다. 정유정 작가에게 강렬하게 남은 기억으로 이 소설을 읽고 다시 소설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인생영화이자 누군가에게는 꿈을 꾸게 해 준 이 소설을 읽기를 더 미룰 수 없었다.

목차

  1. 줄거리
  2. 뻐꾸기 둥지, 기러기와 개
  3. 맥머피는 혁명가인가 희생양인가

 

줄거리

 브롬든 추장이라고 불리는 인디언(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은 정신병동에서 입원 생활을 한다. 정신병동 생활을 한 지 20년째, 모든 사람들은 그가 귀머거리에 벙어리라고 믿고 있다. 사실 그는 귀머거리도 벙어리도 아니었다. 스스로 못 듣는 척하며 벙어리를 자처한다.

 브롬든은 어느 때와 같이 병동 청소를 하고 있었다. 병동 입구가 소란스러웠다. 새로운 환자가 입원한 것이다. 붉은 머리, 두꺼운 팔뚝과 검붉게 그을린 얼굴. 그는 스스로를 도박에 미친 사람이자 뛰어난 사기꾼인 맥머피라고 소개했다. 그는 노동형으로 작업 농장에서 일하다가 농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정신병원에 들어왔다.

 정신 병동은 엄격한 규율에 따라 움직였다. 그 규율을 정하는 것은 수간호사인 랫치드 간호사였다. 그녀는 정신 병동의 지배자였다. 모든 규칙은 그녀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녀는 교묘히 병원 내 환자들과 의료인, 직원들을 조종했고 억압했다. 랫치드 수간호사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부조리한 현실에 환자들의 병세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것 같았다.

 정신병동의 새로운 바람인 맥머피는 이런 정신병동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다른 환자들과는 달랐다. 그는 랫치드 수간호사와 대립하며 환자들에게 웃음을 되돌려주고자 했다. 모든 환자들은 수간호사를 두려워하며 맥머피에게 조력하지 않았다. 하지만 맥머피는 포기하지 않았다. 맥머피는 끊임없이 시스템에 저항했다. 시간이 흘러 브롬든 추장과 하딩, 빌리 등을 필두로 맥머피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결국 사고가 터진다. 맥머피는 정신 충격 요법과 전두엽 절개 수술을 받고 식물인간과 유사한 상태가 된다. 브롬든은 맥머피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는 모두가 잠든 밤 맥머피의 얼굴을 베개로 덮는다. 그리고 팔에 힘을 주어 베개를 눌렀다. 맥버피는 본능적으로 저항했지만 추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분 뒤 맥머피의 숨이 멈춘다. 브롬든은 제어판을 창문을 향해 던진다. 브롬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병동을 벗어난다. 이렇게 소설은 끝난다.

뻐꾸기 둥지, 기러기와 개

 소설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배경 사실이 있다. 미국에서 뻐꾸기는 정신병자를 가리키는 은어이고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을 의미한다. 이 비유는 작중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중반부쯤에 브롬든이 이동이 금지된 밤 중에 창가에 나와 창밖으로 달과 개, 그리고 캐나다 기러기를 보는 장면이 있다. 밤하늘 아래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가을 하늘 한가운데에는 달이 걸려있다. 창문 아래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것은 개였다. 호기심 많은 개는 다람쥐가 여기저기 파놓은 땅 구멍에 주둥이를 처박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달과 밤, 산들바람에 취해버린 개는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멈췄다. 귀를 기울이는 모양새였다. 브롬든도 한참을 귀 기울였다. 저 멀리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캐나다 기러기가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는 소리였다. 창문에서는 기러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에 기러기는 브롬든의 머리 위를 지나쳐 날아갔다. 기러기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개는 기러기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제목에 등장하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는 새의 정체는 캐나다 기러기였다. 이 기러기는 소설의 서술자인 브롬든을 상징한다. 뻐꾸기 둥지로 치환되는 정신병동을 탈출한 존재가 브롬든임을 생각하면 이 상징 관계는 명백하다. 그렇다면 기러기를 쫓던 개는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이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맥머피는 혁명가인가 희생양인가 

 작중에는 웃음에 대한 이야기가 몇 차례 등장한다. 맥머피가 처음으로 병동에 들어왔을 때 맥머피의 웃음소리를 듣고 브롬든이 웃음소리를 들은 것이 몇 년 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던가 매머피가 사람들이 전혀 웃질 않는다는 걸 이상하게 여긴다는 식이다. 이러한 웃음에 대한 이야기나

'몇 미터 앞으로 가자 소리마저 안개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217쪽)'

 이런 묘사를 통해 병동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항상 유쾌하고 활발한 맥머피는 이런 경직됨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랫치드 수간호사에게 저항했다. 그는 억압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했다. 

"그래도 난 노력은 했어. 젠장, 적어도 시도는 했다고, 안 그래?" (210쪽)

 하지만 그것은 맥머피가 수간호사에게 위탁 환자의 퇴원이 결정권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맥머피는 소극적으로 변한다. 수간호사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일체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제는 동료 환자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수간호사를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은 환자들은 이미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맥머피가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길 바랐다.

 이제 맥머피는 오히려 환자들에게 은근한 압박들 받는다. 결국 그는 주변 환자들의 뜻에 의해 수간호사의 억압에 저항하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온전히 환자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에는 그를 혁명의 선두에 서게 만든 환자들의 탓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여러모로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왕과 희생양은 한 끗 차이일 뿐이다. 그 둘은 언제든지 전복될 수 있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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