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 리뷰 - 영화적 경험
오늘도 어느 날

<1917> 리뷰 - 영화적 경험

by 하노(hano)

 

 너무나 보고 싶은 영화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으로 극장에 갈 수가 없었다. 참고 참다 결국 일요일에 극장을 찾았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기대도 컸다. 기대가 크면 기준이 높아지고 실망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감이 커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영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기대감을 충족하고도 넘치는 영화였다.

 

줄거리

 1917년 4월 6일. 연둣빛 들판이 펼쳐져있다. 들판에는 키가 큰 야생화가 우후죽순 피어있다. 들판 중간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나무 아래 톰 블레이크 일병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상관이 그를 부른다. 사람 한 사람을 뽑아 같이 사령부에 가라는 명령이었다. 블레이크 일병은 옆에서 같이 누워있던 스코필드 일병에게 팔을 뻗어 일으켜 세운다. 두 사람은 그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고 여유를 부렸다.

 사령부 막사에 들어가니 에린모어 장군이 있었다. 에린모어 장군은 블레이크 일병더러 자네가 지도를 잘 본다고 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블레이크 일병은 장군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어리둥절하다. 에린모어 장군은 데본셔 연대 2대대에 있는 블레이크 일병의 형 조셉 블레이크 중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톰은 걱정스럽게 혹시 형이 죽었냐고 묻는다. 장군은 블레이크 중위는 아직 살아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에린모어 장군의 설명에 의하면 독일군은 함정을 파놓고 후퇴를 해서 아군을 속이고 있다고 했다. 데본셔 연대는 독일군이 후퇴한 영토를 차지하려 하는데 이대로라면 1600명의 아군이 죽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통신선을 끊어놔 통신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공격 중지 명령이 적혀있는 에린모어 장군의 편지를 데본셔 연대 2대대의 맥켄지 중위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자세한 줄거리

더보기

 두 사람은 어제까지 전투가 벌어졌던 전투지로 향한다. 스코필드는 기다렸다가 밤에 출발하자고 하지만 블레이크는 한시 빨리 형을 구하고자한다. 두 사람은 전투 지를 지나 독일군 참호로 들어간다. 독일군은 정말 후퇴한 상태였다. 독일군이 파놓은 땅굴 통로에서 두 사람은 부비 트랩을 발견한다. 그때 지나가던 쥐가 부비트랩을 건드려 큰 폭발이 일어나고 땅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폭발에 휩쓸린 스코필드의 눈에 흙더미가 들어가 스코필드는 눈을 뜨지 못한다.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의 팔을 잡고 지형지물을 설명하며 땅굴 탈출을 시도한다. 두 사람은 마침내 출구를 발견하고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벗어난다.

 두 사람 앞에는 버려진 농가가 나타난다. 농가에는 체리 과수원을 겸업했는지 체리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마침 체리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블레이크는 부모님께서 과수원을 하셨다며 체리에 대한 지식을 뽐내고 체리 꽃이 피었을 때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다며 체리 과수원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농가를 수색하던 중에 영국 전투기 2기와 독일 전투기 1기 간 전투가 이루어졌다. 격추된 독일 전투기가 농가 방향으로 추락했다. 두 사람은 불붙은 전투기에서 파일럿을 구출해낸다. 스코필드는 편하게 죽을 수 있게 도와주자고 하지만 블레이크는 사람을 살리자며 스코필드보고 물을 떠 오라고 시킨다. 스코필드가 방탄모에 물을 담는 중에 뒤에서 톰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스코필드가 뒤늦게 뒤돌아봤지만 블레이크는 이미 복부에 자상을 입었다. 스코필드는 곧바로 사격해 독일군을 사살한다. 블레이크는 그렇게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독일군에게 사망한다.

 블레이크는 죽기 전에 자신의 어머니에게 대신 편지를 적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스코필드에게 길을 제발 길을 안다고 말해달라며 애원한다. 스코필드는 죽어가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다.

 스코필드는 이제 혼자서 임무를 수행해야한다. 하지만 블레이크가 갖고 있던 지도는 피에 젖어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때 비행기에서 나는 연기를 보고 온 영군군을 만난다. 스코필드는 스위스 대위에게 자신의 임무에 대해 설명한다. 스위스 대위는 스코필드에게 중간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트럭에 탑승시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파괴되어 트럭을 길을 우회하기로 한다. 스코필드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트럭에서 내려 다시 혼자 여정을 시작한다.

 부러진 다리를 건너던 스코필드를 향해 총알이 날아온다. 다리 건너편 건물에 독일군 한 명이 있었던 것이다. 스코필드는 가까스로 저격을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독일군을 사살하는 데 성공하지만 계단 아래로 떨어져 정신을 잃는다. 

 스코필드가 정신을 차린 건 해가 진 이후였다. 어두운 밤 갑자기 조명탄이 터진다. 사방이 불길에 휩싸였다. 스코필드가 정신을 잃은 장소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것이다. 스코필드는 독일군에게서 달아나기 시작한다. 그는 열심히 달리다가 지하실을 발견하고 지하실로 숨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프랑스 여인을 만난다. 지하실에는 여인과 갓난아기가 있었다. 갓난아기는 고아였다. 스코필드는 여인에게 아이에게 먹이라며 자신이 가진 식량 전부를 나눠준다. 그때 종소리가 울린다. 종소리를 들은 스코필드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음을 깨닫고 여인의 만류에도 지상으로 향한다.

 스코필드는 지상에서 독일군과 전투를 치루고 도망을 치게 된다. 도망치던 스코필드는 독일군을 피할 수 없자 물살이 강한 강가로 뛰어든다. 스코필드는 휩쓸려가던 중 시체가 둑처럼 쌓인 곳에서 멈춘다.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서는 영어 노랫소리가 들린다. 홀린 듯 노랫소리를 따라 걸어간 스코필드 앞에는 한 영국군의 노래를 듣고 있는 수많은 영국군들이 나타난다.

 남자의 노래가 끝나고 스코필드는 그들이 그토록 찾던 데본셔 연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데본셔 연대 2대대는 전투 준비를 끝마치고 공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노래를 듣으며 쉬고 있는 이들이 마지막 중대라는 것이다. 스코필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미친 듯이 뛰쳐나간다. 계속 달려 나가도 매켄지 중령은 더 앞에 있다는 이야기만 듣는다. 그때 한 남자가 공격까지 30초!라고 소리친다. 스코필드의 시점은 참호 너머로 틀어진다. 스코필드는 참호를 뛰어넘어 총알이 빗발치는 평지를 내달린다.

 우여곡절 끝에 스코필드는 매켄지 중령이 있는 사령부에 도착한다. 그는 마침내 메켄지 중령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메켄지 중령은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린다. 임무를 완료한 스코필드는 블레이크 중령을 찾아 나선다. 간부는 블레이크 중령이 지난번 공격에 나갔었다며 '야전병원에 있거나 거기에 없다면....'이라고 말한다. 스코필드는 불안한 마음으로 야전병원으로 향한다.

 야전병원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아무도 블레이크 중위가 어디에 있는지 대답해주지 않고 치료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환자들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야전병원을 가로지른 끝에 스코필드는 블레이크 중위를 만난다. 블레이크 중위에게 동생의 죽음을 전달하며 톰 블레이크 일병의 인식표와 반지를 넘긴다.

 그는 친구의 죽음을 친구의 형에게 전한 후, 들판의 나무 아래에 기대어 집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의 사진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촬영

 이 영화는 기술적으로 대단히 뛰어나다. 지금 영화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촬영 기술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수평적 움직임

 영화 초반 부 블레이크 일병과 스코필드 일병이 아군 참호에서 적군 참호로 넘어가는 장면부터 독일군 참호에서 농장 장면까지 카메라의 움직임은 매우 독특하다. 카메라는 일관되게 수평적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영화가 연극적이고 작위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화면들을 잘 보면 왜 이런 연출이 들어갔는 지 알 수 있다. 위의 이미지처럼 관객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뒤통수를 따라가게 된다. 카메라의 수평적 움직임을 통해서 마치 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연기의 시작은 발연기(발걸음)이라고 했던가 표정 연기 없이도 저 두 사람만의 발걸음만으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다급하고 조급한 말하자면 눈이 돌아간 블레이크와 상황 파악이 덜 되고 어리둥절한 채로 블레이크 뒤를 따르는 스코필드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가? 관객은 영화 초반부 내내 인물들의 정면을 거의 보지 못한다. 주로 인물의 뒷모습이나 측면만을 보면서 제3의 임무수행 요원이 된다. 초반부에 이런 연출이 필요한 이유이다. 초반부에 관객들을 스크린 안으로 집어넣고 순식간에 몰입시킨다.

 카메라가 인물들의 뒤를 쫓아가는 것으로 줄 수 있는 효과는 2가지 더 있다. 우선 긴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찾아줘> 포스팅에서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설명에 따르면 긴장감은 관객에게 정보를 얼마만큼 어떤 방식으로 제공하는 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2020/03/23 - [이번 주 영화] - <나를 찾아줘(Gone Girl)> 리뷰 - 무한히 확장되는 공포

 <1917>에서는 관객에게 등장인물 수준으로 정보를 제한한다. 본래 서스펜스는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음으로 발생한다고 했지만 전쟁 영화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관객이 등장인물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하는 요지는 관객이 '앞으로 무언가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전쟁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이미 그런 느낌을 가진 채 영화를 관람하기 때문에 정보를 제공해줄 필요성이 없다. 이미 어떤 나쁜 일이 생길 거라는 느낌을 지닌 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시야를 가려버림으로써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두번째 효과는 감정을 제한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없다. 관객들에게 인물들이 가진 감정을 최대한 제한하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주어진 정보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따라가기 급급하다.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인물들의 기쁨, 슬픔 따위가 아니라 긴장감뿐이다. 이렇게 감정을 절제하던 영화는 필요할 때 인물들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 1600의 생명이 사라지기 일보직전, 절체절명의 순간에 카메라는 천천히 주인공의 얼굴과 주인공이 실패할 시 목숨을 잃을 군인들 급박한 전시상황을 보여준다. 카메라의 수평적 움직임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때 감정은 극대화된다. 이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뽑히는 스코필드의 들판 질주씬은 스코필드가 질주하기 전에 이런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명장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이 주는 감동은 어마어마하다.

원 컨티뉴어스 숏

 이 영화하면 빠질 수 없는 이야기이다. 원 컨티뉴어스 숏이란 원테이크 샷처럼 보이게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화면을 사물로 가린 뒤 테이크를 바꿔 사물에서부터 다시 촬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촬영한 두 장면을 편집할 때 이어 붙이면 마치 한 번에 찍은 장면처럼 보인다. 촬영, 편집적으로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기법이다. <버드맨>에서도 이 기법을 사용하여 화제가 되었었다.

 이 난이도 높은 기법은 가성비가 낮다. 촬영과 편집은 어렵지만 성공적으로 찍어내더라도 기술적으로 뽐낼 뿐 불필요한 연출이라고 비판받기 쉽다. 기교가 뛰어난 가수가 라이브 공연에서 어려운 기교를 해내는 것과 비슷하다. <1917>은 이 원 컨티뉴어스 숏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영화에서 컷이 전환된다고 느껴지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 전체가 마치 한 컷으로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기법의 장점은 무엇일까? 일단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영화의 시간이 리얼타임에 가까울수록 몰입도가 높아진다. 롱테이크 씬이 몰입도가 더 높은 이유이다. 테이크가 길어지고 영화 속 시간이 리얼타임과 가까워지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마치 체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 <1917>에서 이 기법이 가진 미덕은 영화의 호흡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모든 영상 콘텐츠들은 과거에 비해 편집점이 많고 호흡이 짧다. 힐링 예능으로 취급되는 [효리네 민박]도 신경 써서 보다 보면 화면은 힐링 이미지로 채워졌지만 영상 호흡은 전혀 느리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러닝타임이 길어진다고 호흡이 길어지는 것도 아니다. 3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가진 <아이리쉬 맨>도 편집 호흡이 빠르다. 밀도가 높다는 장점도 있지만 2~3시간을 빠르게 달리다 보면 호흡이 가빠지기 마련이다. 과거의 느린 영화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1917>은 영화 속 모든 장면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다른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느린 영상 호흡을 가질 수 있었다.

영화가 주는 경험

  <아바타>가 상영중일 당시에 기억이다. 그때 영화관에 있는 모니터에는 영화 제목 옆에 디지털이라는 각주가 적혀 있었다. 이런 시대에 영화 <아바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쉬리>로 블록버스터가 흥행 한 뒤로 한국 영화계에 찾아온 충격이었다. <아바타>는 외화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대중은 환호했다.

 나는 <아바타>가 재미없었다. 나의 감상은 이랬다. '뭐야? 이건 그냥 돈 퍼부은 타잔이잖아?' 당시 나는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같은 상태였다. 영화의 스토리와 드라마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지금이야 <아바타>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지만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 <아바타>에 호흥한 대한민국 천만 관객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1999년에 나온 타잔을 2009년에 보고 환호하는 바보들이었나? 당연히 아니다.

 스토리만 볼 거라면 영화를 보느니 소설을 읽는 게 낫다. 소설은 분량의 제한과 상상력, 예산의 제한의 측면에서 영화보다 훨씬 자유롭다. 그리고 영화에 비해 훨씬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야기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문화적 이벤트다. 즉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1917>은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서 이런 영화와 극장이라는 장소가 주는 체험적인 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오늘부터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음향시설이 좋은 상영관에 가서 이 영화를 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IMAX관이나 특수관이 힘들다면 일반관에서라도 봐야한다. 이런 영화의 감동은 작은 스마트폰 화면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술마다 맞는 잔이 있듯이 영화도 맞는 상영관이 있는 법이다.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경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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