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Her)> 리뷰 - I'm yours and I'm not yours
오늘도 어느 날

<그녀 (Her)> 리뷰 - I'm yours and I'm not yours

by 하노(hano)

 

 

 

 모든 SF영화 중 가장 가까운 미래를 그려낸 영화가 아닐까 싶다. SF영화지만 영화를 보면 도시의 모습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하나 있다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친구가 있다는 게 아닐까? 비록 그 친구가 육신이 없는 AI일지라도.

줄거리

 테오도르는 편지 대필 작가다. 편지 대필 작가란 다른 사람의 편지를 감정을 끌어내어 대신 적어주는 직업이다. 영화는 테오도르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적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모습은 마치 주어진 상황에 맞춰 연기하는 연기자 같다. 그는 얼마 전에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부인과 이별하고 우울한 삶을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OS(운영체제)를 구입한다. 인격을 지닌 AI, 사만다와의 만남이었다. 

 테오도르와 사만다는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사만다는 호기심이 많고 낙천적이었다. 테오도르는 그런 새로운 자극이 좋았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통해 점점 치유되었다. 테오도르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통해 많은 감정을 배웠다. 두 사람은 서로가 연정을 느끼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테오도르는 새로운 연인이 생기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전부인을 만날 용기가 생겼다. 그는 전부인 캐서린을 만나 미뤄왔던 이혼 동의 서류에 서명하기로 한다. 캐서린을 만나고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테오도르는 육체가 없는 사만다와 사랑을 나누는 행위에 대한 불확신 그리고 사만다는 육체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스파이크 존즈

 각본과 감독을 담당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그는 존재론적 질문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존 말코비치 되기>와 <어댑테이션>에서 존즈 감독은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두 영화에서는 찰리 카우프만 각본가의 역할이 컸다. 보통 영화는 감독의 작품으로 기억되지만 스파이크 존즈의 두 전작을 카우프만의 작품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번에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카우프만을 떠나 스스로 각본을 맡았다. 그러면서 다시끔 AI 사만다를 통해 존재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사만다는 실존하는가? 육신 없는 존재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인간에게 추상적이고 철학적으로 느껴지지만 이 질문을 사만다가 스스로에게 던지면 전혀 추상적이지 않다. 감독은 사만다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들어 관객들이 존재론적 질문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 연기는 이를 더욱 피부로 와닿게 한다. 절절하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슬픔을 전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으면 사만다의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I'm yours and I'm not yours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사랑했다. 사만다도 테오도르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의 형태는 달랐다. 영화의 마지막 테오도르는 모든 사람이 핸드폰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사만다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을지도 몰라.' 테오도르는 기어코 사만다에게 질문한다.

 "혹시 나랑 대화하면서 다른 사람들이랑도 대화하고 있어?"

 사만다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다른 사람들과 사랑하고 있어?"

 사만다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것도 동시에 600명이 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고. 테오도르는 깊은 배신감에 빠진다.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테오도르는 분노하며 사만다에게 말한다. 'You are mine or you're not mine?" 사만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I'm yours and I'm not yours."

 테오도르에게 사랑은 소유의 문제였다. 그는 열렬히 사랑한 것 같지만 사실 그는 항상 사랑을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여겨왔다. 캐서린은 테오도르에게 당신은 항상 내가 순종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테오도르가 캐서린에게 '나는 항상 너를 내 틀에 맞추려고 했지'라며 자기 고백적인 편지를 적는 것으로 마친다. 모르는 사람에게 거짓 감정이 담긴 가짜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해서 진짜 인연이었던 사람에게 진짜 편지를 적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두 편지 모두 같은 문구로 끝나며 수미상관 구조를 가진다.

 you are my friend to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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