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동네에 맥도날드 있어?, <한여름의 판타지아> 리뷰
오늘도 어느 날

너희 동네에 맥도날드 있어?, <한여름의 판타지아> 리뷰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골이랄지, 하여튼 도심이 아닌 지역 시내가 아닌 외각에 사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너희 동네 맥도날드 있어? 버거킹 있어? 유명 체인점의 유무가 그 동네의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가장 흔히는 맥도날드를 물어보고 13년도에 도넛에 유행했을 때는 크리스피를 물어본 것 같다. 요즘엔 서브웨이가 그런 역할을 할 것 같다. 우리 동네는 롯데리아 밖에 없는 동네였다. 이탈리아에는 관광객이 현지인에게 말을 걸면 '맥도날드는 저기 있어요'하고 대답해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마만큼 맥도날드를 찾는 외국인이 많다는 뜻이겠지. 맥도날드의 장점은 전세계 어디에 가도 찾아볼 수 있고, 동일한 퀄리티의 맛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맥도날드를 즐겨 가지 않았던 사람도 외국에 나가면 가장 만만히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맥도날드도 없는 한 시골 마을에 찾아간 외지인들에 관한 영화다.

 

[줄거리]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지난번에 리뷰한 <최악의 하루>처럼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최악의 하루>는 액자식 구성으로 그 구성을 은유적으로 영화에 녹여냈다면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2부 구성으로 대놓고 1부와 2부를 나눠뒀다. 1부에서는 영화감독 ‘김태훈(임형국 분)'이 통영과 '미정(김새벽 분)'과  영화 촬영 조사를 위해 일본의 지방 소도시인 나라현 고조시를 방문한다. 고조시는 이미 쇠락한 도시로 노인밖에 살지 않고,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시골 도시였다. 태훈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인터뷰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막연하기만 하다. 취재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태훈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터지는 불꽃을 보고 태훈은 뭔가 깨달은 듯하다.

 2부는 1부에서 취재한 결과물이 이어진다. 배우 혜정(김새벽 분)은 고조시에 갔다가 유스케(이와세 료 분)를 만난다. 유스케는 혜정에게 호감을 갖고 혜정에게 고조시 곳곳을 안내하며 혜정의 여행에 동참한다. 유스케는 혜정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만 혜정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불꽃놀이처럼 찰나에 찾아오는 영감]

 1부는 흑백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2부는 컬러로 극영화 형식으로 촬영됐다. 형식적으로 1부와 2부를 명백하게 분리시킨 것이다. 1부의 흑백 화면은 고즈넉한 고조시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어딘가 정겨운 느낌이 들고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공간을 잘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고조는 이미 죽은 도시나 마찬가지이다. 태훈이 고조시에서 만나 인터뷰하며 듣는 이야기도 모두 지난 과거의 일이다. 흑백 화면은 과거를 형식적으로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태훈이 고조시에 도착한 첫날 유스케라는 젊은 공무원의 안내로 고조시 곳곳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던 중 태훈은 문득 유스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도쿄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그가 배우라는 꿈을 포기하고 지역 공무원이 된 이야기를 듣고, 태훈은 미정과 둘이서 맥주를 마시며 자신은 배경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유스케의 이야기를 듣고 막연하게나마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1부에서 고조시는 맥도날드는 커녕 롯데리아도 없을 것 같은 도시처럼 보인다. 과연 이런 장소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의심된다. 더군다나 창작자인 태훈은 미정의 도움 없이는 의사소통도 불가능한 외지인이다. 창작자가 영감을 찾는 일은 이처럼 말도 하나 통하지 않는 도시를 헤매는 것 같은 일이다.

 다음날에는 고조시 토박이인 겐지 씨를 만난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방향을 잡은 태훈은 본격적으로 겐지 씨와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밤, 태훈이 창밖을 바라보는 데 갑자기 불꽃놀이가 펑하고 터진다. 불꽃놀이를 바라보던 태훈은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외지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이 고생 끝에 길을 찾은 것이다.

 1부는 창작자가 창작하기까지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의 내용적으로나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1:1로 일치하는 구성이다. 형식 자체가 함포 하고 있는 의미를 설명하는 메타성을 지닌 영화인 것이다. 영화의 내용에 따르면 창작은 외국 길거리 한복판에 떨어져 길을 헤매는 것처럼 막연한 과정을 거쳤다가도 불꽃같은 찰나의 순간에도 떠오르는 것이다.

 

[불꽃놀이처럼 짧지만 아름다운]

 2부는 1부에서 태훈이 취재한 결과물이다. 2부 곳곳에서 1부에서 태훈이 취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배우들의 대사나 장소 등을 자세히 보며 1부의 내용이 어떻게 2부에서 변형되고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다. 2부가 1부와 달리 컬러인 것은 작품 속 일어나는 일들이 현재 진행 중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혜정은 감 농사를 짓는 유스케를 만난다. 유스케는 혜정을 꼬셔보려고 온갖 수작질을 부리는데 그 모습이 나쁘지 않다. 상대에게 선택권을 넘기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 배려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사랑에 빠진 젊은 두 남녀라는 소재 때문에 <비포 선라이즈>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전에 <비포 선라이즈>는 로맨스의 불편한 지점을 모두 배제하고 로맨틱한 요소만 남겨놓은 가장 편안하고 로맨틱한 영화라고 소개했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도 비슷한 면이 있다.

 무더위가 찾아온 일본의 시골 풍경과 여행, 젊은 두 남녀, 로맨스를 위한 모든 조건이 모였다. 게다가 이토록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남자라니. 유스케는 혜정이 떠나는 전날 밤, 오늘은 축제가 있는 날이라며 함께 가지 않겠냐고 꼬시지만 혜정은 이를 거절한다. 결국 유스케는 강가에서 혜정은 숙소 방에서 각자 불꽃놀이를 보게 된다. 이틀이라는 한정적인 짧은 시간 속에 유스케와 혜정은 불꽃놀이처럼 짧지만 아름다운 한 순간을 보냈다.

 2부는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1부가 재료가 되어 2부에서 조응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1부와 2부의 경계가 분명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처럼 서로 겹쳐있다. 아주 얇은 차렵이불 하나가 다른 이불 하나 위에 살포시 포개어져 있는 듯한 이 영화는, 입체적이고 아름답게 고조시의 무더운 여름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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