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최악의 하루> 리뷰
오늘도 어느 날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최악의 하루> 리뷰

by 하노(hano)

주관적해석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리뷰를 쓸 때면 이 영화가 왜 좋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의 기본 지침은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에 대해 쓰자'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쓰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싫은 것은 이유가 수십 가지지만 좋은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왜 좋냐는 질문에 3가지 이유라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면 매우 훌륭한 설명이다. 대부분은 '그냥' 좋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운 과정이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이유로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서 리뷰를 작성해왔고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더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미리 밝히건대, 이번에는 내가 재미없게 본 영화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어디까지나 내가 재미 없게 본 것이지 이 영화가 나쁜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최악의 하루>는 2016년도에 개봉해서 독립영화로서는 흥행에 꽤 성공한 영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마만큼 재미있게 보고 좋아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아주 큰 약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불쾌한 소재다. <최악의 하루>의 주인공 은희(한예리 분)는 하루에 세 남자를 만난다. 남자 친구인 현오, 내연남이었던 운철, 오늘 처음 만난 외국인 료헤이이다. 은희는 세 남자를 번갈가며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현오 앞에서는 까칠하고 예민한 동갑 여자 친구의 모습으로, 운철을 만날 때는 감성적이며 단아한 여성으로 료헤이 앞에서는 외국어에 서툰 귀여운 모습으로. 그렇다. 불쾌한 소재의 정체는 바로 바람이다.

 불쾌감을 주거나 타부를 소재로 삼고도 훌륭한 작품도 있다. 불쾌한 소재는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잘 사용한다면 사람의 본능적인 부분을 자극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그래서 불쾌한 소재는 영화에서 종종 사용되곤 한다. 이런 소재를 사용하고도 호평을 받은 영화 중 대표적인 것으로 외도를 소재로 사용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있다. 이러한 소재를 사용하는 작품은 관객을 어떻게 납득시킬지가 중요한 숙제다.

 관객들 납득시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타부시 되는 행동을 하는 주체에게 관객을 이입시키는 것이다. 즉 주인공이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행동(외도, 배신, 살인)을 하는 행동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그러한 행동을 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거나,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 관객은 주인공이 나쁜 행동을 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불쾌함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한 다른 매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의 색감이나 음악에서 오는 감성일 수도 이어도 좋고 배우의 연기력이어도 좋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매력이 소재가 주는 불쾌감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는 매우 좋은 예시다. 조커가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사회를 전복시키더라도 관객들은 불쾌하지 않다. 이미 주인공의 심리에 몰입하였고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력에 홀렸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심지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까지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의 공통점은 관객이 불쾌감을 느끼기 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이 불쾌함을 느낀 뒤에는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주더라도 이미 늦었다. 관객은 불쾌함을 지울 수 없다. <최악의 하루>는 장점이 매우 많은 영화지만, 내가 느끼기에 불쾌감을 지우는데 실패했다. 배우들이 아무리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전달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 전달자(주인공)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요리를 내오더라도 코스 순서에 맞지 않는다면 그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강렬한 메인 요리를 먹은 뒤에 전채 요리가 나온다면 무슨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화이트 와인을 내놓더라도 양념이 강한 스테이크와 함께 먹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최근에 리뷰 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전에 쓰던 방식은 리뷰라기보다는 영화 분석에 가까워 보였다. 무엇보다 영화를 분석하면서 보다 보니 영화를 보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또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다. 이제는 그만한 노력과 시간을 기울일 수는 없었다. 지금 쓰는 리뷰는 영화에 대한 분석도 나의 해석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나의 관점으로 영화를 해석했다기보다는 일반적이고 표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너무 가벼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다른 분들이 쓴 리뷰와 에세이를 읽으며 어떻게 저렇게 자기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소화시키는지 감탄만 나왔다.

 어젯밤에 이전에 쓴 <시네마 천국> 리뷰에 댓글이 달려서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오랜만에 내가 쓴 리뷰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감탄이 나왔다. 비문도 많고 표현도 빈약했지만, 영화에 대한 분석과 나의 관점이 적절히 녹아 있었다. 내가 이런 글도 썼었구나 싶었다. 아, 그 순간 깨달았다. 순서가 잘못되었구나. 나는 어떤 형식으로 리뷰를 써야 하는 지만 고민했었다. 그전에 고민해야 했던 것은 어떻게 나만의 관점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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