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 먼 쇼> 리뷰 : 대사 두 줄의 힘
오늘도 어느 날

<트루 먼 쇼> 리뷰 : 대사 두 줄의 힘

by 하노(hano)

 

 

 17억 명의 인구가 한 사람만 바라본 지 10,909일째.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로 거대한 지상 최대의 스튜디오는 5000대의 카메라로 곳곳을 감시하고 있다. 이 지상 최대의 쇼의 스타 트루먼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첫걸음을 땐 순간, 첫사랑의 순간, 잠자는 모습까지 365일 24시간 내내 실시간 방영 중이다. 트루먼은 태어난 순간부터 거짓 속에서 자라났고 그의 인생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가짜뿐이다. 트루먼은 철저히 짠 각본 속 세상에 갇혀 스튜디오 속 연출이 진짜 세상이라고 믿고 있다. 작은 국가의 GDP 규모의 돈을 벌어들이는 쇼와 이를 소비하는 전 세계 17억의 인구로 구성된 이 세계관은 동정심이라고는 모르는 비도덕적인 사람들로 가득한 뒤틀린 지옥인 걸까? 글쎄 과연 그럴까? 

 

 트루먼이 출근하려는데 난데 없이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조명이 떨어졌다. 22년 전에 바다에 빠져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나타나고, 엘리베이터 문 뒤에는 화장을 받으며 휴식하고 있는 배우들이 있다. 트루먼은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트루먼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지만 트루먼 쇼의 총책임자는 상황을 조정하며 그의 탈출을 막는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와의 22년 만의 재회 장면을 감동적으로 연출해내며 명장면의 탄생과 트루먼의 탈출 의지를 꺾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는 데 성공한 줄로만 보였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트루먼은 밤 사이에 모든 제작진과 시청자를 속이고 탈출을 강행한다. 물에 대한 공포증마저 극복하고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고 한다. 총책임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이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의 탈출을 막기 위해 바다에 폭풍우를 일으킨다. 갖은 방해 끝에도 트루먼은 바다의 끝에 도달했다. 더 이상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크리스토프는 트루먼과 직접 대화를 시도한다. 크리스토프는 바깥세상은 온갖 거짓과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이 세상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트루먼이 아무 말도 않자 크리스토프는 무엇이라도 말해보라며 보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장면인 인사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말해 두죠. 좋은 오후, 좋은 저녁, 좋은 밤 보내세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트루먼이 세트장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환호한다. 감동적인 인간 승리일 수 없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며 그 알은 세계라는 데미안의 가르침이 모티브가 되어 큰 감동을 안겨준다. 조물주처럼 군림하며 한 사람의 인생을 조작하고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자를 비판하며 사실은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트루먼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고전에서부터 이어지는 성공 공식이나 마찬가지다. 자유에 대한 갈망이란 얼마나 숭고한가.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보니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다른 채널에서는 뭐해?"

 "몰라."

 

 그야말로 영화가 끝나기 직전,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1초 전 바로 그 순간에 아주 짧은 두 대사가 등장한다. 트루먼이 탈출하는 것을 지켜보며 두 손을 주먹 쥐고 응원하던 두 남자가 트루먼 쇼의 막이 오르자마자 내뱉는 말이다. 감동이 물밀려 오듯 벅찬 가슴을 안고 상영관을 벗어나려는 순간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감동은 감동이었고 이젠 뭐 봐야 해? 단 일 초의 순간도 감동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소비 거리를 찾는 인간들. 트루먼의 30년의 감금 세월과 목숨을 건 탈출, 인간성의 회복이 이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소비 거리에 불과했다. 이 짧고 단순한 대사 두 줄이 트루먼 쇼의 세계를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현실세계까지 확장시켜 버린다.

 

 현재 한국의 미디어는 리얼리티 쇼, 관찰 예능으로 점철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포맷의 프로그램은 없냐며 지겹다고 비난하지만 여전히 잘 팔린다. 시청자들은 포맷의 반복을 비판하지만 포맷자체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이들에게 관찰되며 하나의 오락거리로 전락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은 빠르게 이에 적응했다. 차이가 있다면 트루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찰 대상이 되었지만 현실에 세상에서는 관찰 대상이 되길 사람들이 자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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