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리뷰 - 사랑을 잃고도 물방울로 변하지 않은 인어공주의 이야기
오늘도 어느 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리뷰 - 사랑을 잃고도 물방울로 변하지 않은 인어공주의 이야기

by 하노(hano)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인 포스터

 

 

들어가면서

 사랑을 잃고도 물방울로 변하지 않은 인어공주의 이야기.

-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화와 비교하는 텍스트는 디즈니의 영화가 아닌 안데르센 원작을 기준으로 합니다.

 

 인어공주는 동화 중에서 많은 인기를 끄는 작품이다. 인어공주가 사람들 기억 속에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이야기의 비극성 때문이다. 인어공주는 동화 중에서도 드물게도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경험한 새드엔딩일 것이다. 어린 시절 조우한 비극은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이 동화를 처음으로 읽은 또는 들은 어린아이들은 난생처음으로 슬픔과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 인어공주는 사랑을 갈구한 끝에 죽음의 문턱에 선다. 이때 인어공주의 언니들이 나타나 인어공주에게 선택지를 보여준다. 왕자를 죽이고 인어로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왕자를 살리고 물방울이 되어 사라질 것인가. 

 인어공주는 동화 속 여성 캐릭터 중 강한 주도성을 지녔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왕자에게 다가가는 여성 캐릭터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빠진 왕자를 구하기도 하고 사랑을 위해 해저 속 생활, 공주라는 신분 그리고 목소리를 포기하기도 한다. 마지막 순간 사랑과 목숨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선택을 내리는 적극적인 캐릭터이다. 그런데 인어공주는 정말 주도적인 인물일까?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은 인어공주

 줄거리

 쿠미코는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는 손녀를 숨기고 싶어 한다. 쿠미코의 세상은 판자촌의 좁은 방과 할머니가 전부다. 쿠미코는 할머니에게 때를 써서 산책을 나간다. 할머니는 마지못해 손녀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시켜주는데 그마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이른 아침시간에만 산책을 나가고 담요로 얼굴까지 덮어 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쿠미코는 우연히 츠네오라는 대학생 남자를 만난다. 쿠미코는 츠네오를 경계했다. 하지만 츠네오는 계속 쿠미코를 보러 왔다. 쿠미코는 서서히 경계를 풀고 결국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츠네오는 쿠미코에게 계속 질문을 건넨다. 그 질문은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나 측은지심이 섞인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츠네오는 쿠미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다. 츠네오는 쿠미코의 이름을 알면서도 쿠미코가 희망하는 조제라는 이름으로 불러준다.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한 달 후, 일 년 후』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쿠미코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책 속 주인공의 이름으로 쿠미코의 꿈속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츠네오는 쿠미코를 조제라고 호명함으로써 쿠미코의 이상을 인정해준 것이다. 츠네오는 할머니와 달리 쿠미코를 숨기지 않는다. 쿠미코는 츠네오와 함께 난생처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도로를 돌아다니며 햇빛이 가득한 세상을 눈에 담는다. 이처럼 쿠미코 아니 조제는 츠네오와 추억을 쌓아간다.

 이윽고 두 사람은 우정 이상의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 순간 츠네오의 여자 친구인 카나에가 조제의 집에 '견학'을 온다. 조제는 자신의 세상 밖에서 츠네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녔음을 알게 된다. 조제는 큰 배신감을 느낀다. 조제는 츠네오에게 악을 쓰며 집 밖으로 쫓아낸다. 이날 이후 츠네오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조제는 할머니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며 시간이 흐른다. 이윽고 나이가 많던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조제는 혼자 남는다. 일주일에 몇번씩 찾아오는 복지과 직원들의 도움으로 조제는 살아가지만 걸을 수 없는 조제는 불편함이 남아있다. 조제는 옆집에 사는 변태 청년에게 가슴을 만지게 해주고 도움을 받아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런 생활을 해나가던 중 양복 차림의 츠네오가 집에 찾아왔다. 어디서 들었는지 츠네오는 할머니의 부고를 알고 있다며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어온다. 조제는 참견하지 말라며 성질을 낸다. 츠네오는 무정하게 집을 나가려한다. 조제가 "가버려. 가버리라고 진짜 가버리는 녀석은 빨리 가버려!"라고 소리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결국 두 사람은 1년의 동거를 끝내고 이별한다. 조제는 다시 혼자 남은 집에서 물고기를 구워 먹는다.

 

 신발

 조제는 츠네오와 이별하기 전에 떠난 여행에서 이상한 말을 한다. 나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헤엄쳐 왔다고. 조제는 동화 속 인어공주와 달리 인어인 채로 뭍으로 올라온 인어인 것이다. 조제는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랑에 목 매달려 죽음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사랑이 지나간 뒤에도 꿋꿋이 생존행위(먹는 것)를 계속해나간다.

 조제는 언젠가 츠네오가 자신을 떠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의 마지막 3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조제의 방식이다.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나면 난 길 잃은 조개 껍데기처럼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계속 굴러다니게 되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것도 나쁘진 않아."

 외로운 것도 모르고 시간만 흘러보내던 조제는 츠네오를 만나고 사랑을 알게 되었고 두려워하던 호랑이(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조제는 이별이 슬프긴하지만 사랑을 통해 성장하였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마지막에 조제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혼자 장을 보고 돌아온는 장면은 스스로 생존 할 수 있는 자력을 갖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그녀는 이제 누군가의 도움이 없더라도 새로운 발(휠체어)를 통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휠체어는 큰 의미를 갖는다. 신발은 전통적으로 신분 또는 자유를 상징한다. 사람은 신발을 신고서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나서 신분 상승과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조제가 휠체어(신발)를 탔다는 것은 이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왔음을 의미한다.

 

츠네오

 줄거리

 마작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츠네오는 스스로를 조제라고 부르는 소녀를 만난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를 앓고 있었다. 츠네오는 조제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는 할머니의 느린 발거름에 속도를 맞춰 걷는다. 할머니는 츠네오를 집으로 초대하고 아침 식사를 차려준다. 츠네오는 소녀에게 계란말이가 맛있다고 한다. 소녀는 퉁명스럽게 '내가 만든건데 당연하지'라며 대답한다. 소녀의 목소리는 걸걸한 할머니의 말투와 비슷했다.

 그 뒤로도 조제가 신경 쓰인 츠네오는 조제의 집을 찾아간다. 츠네오는 조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된다. 조제는 할머니가 밖에서 주서온 헌책들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서 잡학다식했다. 조제는 가스렌지를 사용할 때면 낡은 나무 의자 위에 올라갔다가 내여올 땐 다이빙 하듯이 쿵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뛰어내린다. 조제라는 이름은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책 속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츠네오의 잘못으로 조제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츠네오는 조제를 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고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남부럽지 않게 사랑을 나눈다. 1년 뒤, 츠네오는 집안 어른들에게 조제를 소개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두 사람은 차를 빌려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츠네오의 고향으로 가는 그 짧은 여정 속에서 츠네오는 어느샌가 조제가 불편하다. 어느 순간부터 츠네오는 조제에게 타이르듯이 말하고 있었다. 츠네오는 조제를 등에 업고는 휠체어를 사자고 말한다. 조제는 '휠체어는 필요없어. 너가 업어주면 되잖아.'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츠네오는 '내 생각도 해줘. 나도 언젠가는 늙는다고. '라고 대답한다. 몇달 뒤 결국 츠네오는 조제를 떠나게 된다. 이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휠체어

 츠네오는 헤프고 모범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걸음이 불편한 할머니의 느린 발걸음에 맞춰 걸어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조제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조제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처럼 장애가 있는 조제를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야만다. 인어공주가 바다마녀의 저주처럼 물방울이 되었듯이 할머니의 예언이 현실로 이루어진 지점이다. 조제와 즐겁고 행복하게 대화하던 츠네오는 어느샌가 조제에게 가르치고 타이르듯이 말하기 시작한다.

 그가 조제에게 휠체어를 사자고 이야기한 것은 조제를 위함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였다. 조제가 스스로 이동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야 자신이 자유로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발은 이별의 상징이다. 새신을 신은 사람은 어디론가 떠나고야만다. 츠네오가 조제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마무리하며

 인어공주는 가장 큰 의사표현의 수단인 목소리를 포기한 순간 이미 비극적 결말이 예정되어있었을 지 모른다.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발언권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발언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여성, 유색인종, 아동. 따라서 목소리를 포기하는 행위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포기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스스로 약자의 지위로 내려오고 왕자와 신분적 동등성을 잃어버린 순간 인어공주의 패배는 정해졌다. 앞서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인어공주는 정말 주도적인 인물인가?

 인어공주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부정한다. 인어로서 자신을 부정하고 인간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다. 바닷 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던 지르너미를 버리고 두 다리를 선택한다. 걸을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고통이 동반되지만 그래도 좋다. 공주는 육지에 올라왔으니까. 혀를 잘렸지만 그래도 괜찮다. 왕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 자기 파괴적인 이런 인어공주의 행동은 사실 스스로의 욕망을 위함이 아니었다. 인어공주가 지르너미를 버린 것은 할머니가 지르너미가 육지 사람들이 보기에 징그러워 보일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인어공주는 왕자 곁에 함께있지만 왕자는 그녀를 어린애 취급할 뿐이다. 왕자는 그녀를 '귀여운 고아'라고 부르며 데리고 다닌다. 인어공주는 자신이 왕자의 목숨을 구했음을 말하지도 못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속으로 답답한 마음을 울부짖으며 왕자를 바라보는 것 뿐이다.

 반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속 조제는 어떤가. 그녀는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사랑에 목숨 걸지 않는다. 열렬하게 사랑했지만 열열하게 사랑했지만 떠나가는 츠네오의 다리가랑이를 붙잡고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할머니 같은 거친 말투를 쓰며 좋아하는 요리를 한다. 그녀는 깊은 바닷속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생활을 감내한다.

 

 

ps. 이동진 평론가의 한 줄 평이 폐를 찌르는 듯하다.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결국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츠네오의 입장에서 영화를 해석한 글이다. 그렇다 우리는 대부분  조제가 아니다. 츠네오의 삶을 살아간다. 나 역시 지쳐서 도망친 적이 있다. 그곳에도 부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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