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고 쓰는 글: 기다림을 가르쳐주는 씨앗 가꾸기
오늘도 어느 날

(해)보고 쓰는 글: 기다림을 가르쳐주는 씨앗 가꾸기

by 하노(hano)

 

씨앗을 처음 심은 모습

 

 5월 초, 씨앗을 심었다. 총 10종의 씨앗이었다. 토마토 모종 2개와 고추 모종 2개도 사다가 심었다. 초등학생 때 양파를 키우면서 관찰 일기를 쓴 이후로 작물을 기르는 건 처음이었다. 과연 잘 자랄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하필이면 첫날부터 날씨가 흐리고 기온이 낮았다. 씨앗이 자라려면 평균 온도가 23도 정도가 되어야한다고 그랬는데, 날씨가 너무 쌀쌀했다. 나도 가벼운 외투를 걸쳐야 베란다에 나갈 수 있을 정도였는데, 작고 연약하기만 한 씨앗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씨앗에서 싹이 발아한 모습

 

 걱정이 무색하게 씨앗을 심은지 3일만에 겨자와 로메인, 치커리에서 발아가 시작되었다. 다음 날에는 샐러드 키트에서는 대부분 싹이 나기 시작했다. 한 번 싹이 나기 시작하자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아침에 본모습과 점심에 본모습이 달랐다. 아침에는 떡잎이 땅바닥에 붙어있다시피 했는데 점심에 확인해보면 훌쩍 자라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싹의 모습이 신기해서 수시로 다가가 확인해보곤 했다.

 

 싹의 상태를 확인하고 물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을 흙냄음을 맡으며 시작하자 기분이 좋았다. 흙을 이렇게 자주 만져 본 것이 언젠지 모르겠다. 떡잎이 떨어지고 본잎이 두세 쌍 나기 시작하면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언제쯤 본잎이 날지 본잎은 어떤 모양일지 기대됐다. 저 귀여운 떡잎이 떨어질 것이 아쉽기도 했다.

 

 비가 자주 왔고 기온이 자주 낮아졌다. 그럼에도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향신료 키트에서도 싹이 하나 둘 나기 시작했다. 총 10종의 씨앗에서 8종에서 싹이 났다. 유독 두 종의 씨앗이 시간이 지나도록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미 싹이 난 친구들은 튼튼하게 자라나는 데,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키가 웃자라거나 뿌리가 길게 자라난 몇몇은 이미 더 큰 화분에 옮겨 심어준 뒤였다.

 

옮겨 심은 싹

 

 결국엔 아직 싹이 나지 않은 두 종은 재배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너무 추웠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너무 깊이 심어서 그랬을까? 혹은 너무 얕게 심어서 씨앗이 씻겨 나간 걸까? 온갖 원인을 생각해 봤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심고 남은 씨앗을 계란 껍데기에다 흙을 채워서 심어주었다. 이번에는 저번에 심을 때보다 더 정성을 기울였다. 이미 씨앗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씨앗을 심었지만 그럼에도 물 챙겨주는 일을 잊지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한 씨앗 위로 매일 물을 뿌려주었다.

 

드디어 싹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씨앗을 처음 심은지 2주가 지났다. 이젠 제법 키가 자랐다. 본잎도 하나 둘 나기 시작했고 이젠 하루하루 모습이 눈에 띄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전보다 지켜보는 재미가 덜했다. 새로 옮겨 심은 텃밭은 물이 잘 빠지지 않아서 예전처럼 매일 물을 주지 않아도 됐고, 손이 덜 가자 관심도 조금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방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망 없다고 생각한 펠릿에서 갑자기 싹이 났다. 심은지 2주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싹이 났고 다음 날에는 나머지 아이도 발아했다. 비록 싹이 조금 밖에 나진 않았지만 자라긴 자라난 것이다. 가끔은 물 낭비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계속 물 주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힘겹게 모습을 드러낸 두 친구에게 더욱 관심이 쏠렸다. 혹시나 뿌리가 뽑힐까, 목말라죽을까 애지중지하며 돌보고 있다.

 

 요즘에는 원하는 결과를 너무 쉽고 빠르게 얻는 것 같다. 물건 주문을 하면 취소할지 말 지 고민할 틈도 주지 않고 다음날 아침이면 택배가 도착해 있고, 동영상은 시간을 돌려 결과만 쏙 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잠시도 궁금증을 참을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기다리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 같다. 씨앗을 기르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줄기를 잡아당기면 뿌리가 뽑히고, 싹이 나지 않는다고 흙을 뒤적거리면 씨앗이 사라지고 만다.

 

 식물을 기르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기다림이 따르는 일이다. 모든 것을 시간이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일도 있는 법이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씨앗에 계속 물을 주자 결국 싹을 틔웠다. 지금은 잘 자라고 있다. 누구에게나 씨앗이 있지만 각자 싹을 틔우는데 필요한 시간은 다르다.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울 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주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지만 계속 시간을 들여 물을 준다면 언젠가는 흙 아래에서 움츠리고 있던 씨앗에서 싹이 올라올 것이다. 싹을 틔우는 데 필요한 것은 기다림과 꾸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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