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서평, 노년 소설가의 나를 되돌아보기
오늘도 어느 날

『그 남자네 집』서평, 노년 소설가의 나를 되돌아보기

by 하노(hano)

타계 10주기 『그 남자네 집』

 

 얼마 전 박완서 선생님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출판사 별로 선생님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아직까지도 그를 기억하고 찾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성 주도적인 문학계에서 드물게 늦은 나이에 등단한 고학력 여성 작가로서의 활동이나 6.25 전쟁의 사료로도 무색하지 않은 전쟁에 대한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담은 소설 같은 문학사적 의미를 차지하고서, 작품만 보더라도 그 높은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이번에 리뷰할 책은 그중에서도 그의 장편 소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출간된 『그 남자네 집』이다.

 

 『그 남자네 집』을 읽은 뒤 첫 감상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쓴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이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은 박완서 선생님의 인생과 꼭 닮아 있었다. 1인칭 주인공인 '나'는 노년이 되어서 후배가 이사간 집을 찾아간다. 주인공은 첫사랑인 그와 함께 보냈던 돈암동에서 옛 기억을 떠올린다. 먼 친척뻘이었던 그는 내가 살던 동네에 이사를 온다. 번듯하고 큰 조선 기와집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전쟁이 터지고 그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전쟁에 모든 남자가 징집되어 씨가 말라 유일한 또래 남자였다. 나와 그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철부지에 세상 물정 모르게 행동하는 그에게 점점 마음이 식어간다. 그러던 중 미군 부대에서 같이 일하던 은행원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다주고 가정적인 남편이 있음에도, 시댁 살이와 처음 해보는 살림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 시기에 우연히 시장에서 그의 누나를 만나서 그의 소식을 듣는다. 아직까지도 사랑앓이를 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에 나는 일탈을 꿈꾼다. 나는 그와 밀회를 하는 동안에는 처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평소에 자주 두통을 호소하던 그는 갑작스럽게 실명한다. 이일을 계기로 나는 그와 헤어진다. 이후로 아이를 갖고 충실한 가정생활을 이어간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성실한 남편을 두고 다른 마음을 품기도 하고, 며느리를 위하는 시어머니에게 혐오를 느끼기도 한다. 철 없이 불만만 분출하는 '내'가 못나보이고 불편하기도 하다. '내'가 불편한 이유는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추모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지닌 속물근성을 꿰뚫어 본다.

 

 '박완서 선생님이 말이나 글에서 남을 비판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남보다는 자신에 대한 비판, 비판보다는 우리 모두가 지닌 속물근성을 꿰뚫어 보는 해학적 시선, 그리고 거기에 대한 연민과 이해를 거쳐 궁극적인 사랑에 이르려는 노력, 그것이 선생의 삶이요 문학이었다.'

 

 남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나의 내면을 탐구하여, 내 속의 부정적인 면을 밝혀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의 소설에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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