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쓰는 글: 자전거에 관한 생각
오늘도 어느 날

보고쓰는 글: 자전거에 관한 생각

by 하노(hano)

 

 자전거는 특이한 탈 것이다. 스스로 균형을 잡지 못하는 기구여서 운전자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두 발로 가만히 서 있지 못하는 물건이며 두 발로 서 있기 위해서는 계속 페달을 밟아줘야 한다. 바퀴가 멈추면 자전거는 옆으로 넘어지고 만다.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서 운전자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자전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두 가지 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일본의 만화 장면이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크레용 신짱 극장판의 일부인 '히로시의 회상'이다. 한국에서는 신형만으로 알려진 짱구의 아버지 히로시가 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자전거는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다른 하나는 허니와 클로버라는 순정 만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본 열도 일주 장면이다. 타케모토라는 주인공이 자아 찾기 여행으로 자전거를 끌고 열도의 북단인 홋카이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 역시 성 역할 고착의 예시일지도 모르지만, 자전거는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물건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존재가 아버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두 이야기에서도 자전거는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두 이야기에서 자전거를 통해 두 사람이 성취해내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히로시의 이야기에서는 자전거를 통해 한 사람이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다가 성장하고 다시 자신이 새로운 가정을 차리는 과정에 대해 보여준다면, 타케모토는 성실하게만 살아온 청년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신을 얽매 오던 것들을 떨쳐내는 성장을 담고 있다.

 히로시의 회상을 보면서 나는 자전거 타는 과정이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스스로 걷기 시작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탔다가 스스로 페달을 밟게 된다. 시작단계에서는 완전하지 못해 보조 바퀴가 필요하다. 그러다가 보조 바퀴를 달고 자전거를 타다가 보조 바퀴를 떼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제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 나 아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부모님이 그랬든 누군가 뒤에 태우는 때가 올 것이다.

 보조 바퀴를 뗄 때 필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뒤에서 받쳐주는 존재이다. 보조 바퀴를 빼자마자 처음부터 100미터씩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균형감각을 타고났어도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모이든 친구가 든 간에 누군가 뒤에서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잠시 도움을 받고 나면 그 뒤부터는 혼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언제까지고 뒤에서 잡아 줄 수는 없다. 뒤에서 균형을 잡아주던 사람이 손을 놓았을 때, 자신이 스스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면 자전거는 넘어진다. 자신을 의심하는 순간 넘어지는 것이다.

 자아를 찾기 위해 자전거 여행을 떠난 타케모토의 이야기가 이에 해당한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온 타케모토는 어머니에게 부담을 안겨주기 싫어 모범적으로 행동한다. 무척 성실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타케모토에게 어머니는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한다. 타케모토는 단 한 번도 뭘 해보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던 타케모토는 이거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해 미대에 진학한다. 어느새 4학년이 되어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타케모토는 무너지고 말았다. 각자 잘하는 분야로 나아가는 선배들과 이미 대단한 성취를 이룬 친구를 보며 타케모토는 자신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뭘 잘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도 실수가 많은 아이였다. 학원 가는 요일을 헷갈려 엉뚱한 날에 가거나 심부름을 해도 실수를 난발했다. 23살이 되어 비행기를 처음 타던 때에 출발 날을 헷갈려 공항에 하루빨리 간 걸 보면 여전히 실수가 많은 걸지도 모른다. 실수를 많이 하다 보니 또 잘못을 저지를까 봐 걱정하고 긴장했다. 모든 일에 이중 삼중으로 다시 확인해보고 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실수가 줄어들었다. 지금도 여러 번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여전히 일을 맡으면 긴장을 심하게 한다. 날 얽매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나 자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 나의 행동반경을 줄이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는 페달을 멈추면 넘어진다. 하지만, 가끔은 페달을 멈추고 자전거를 멈춰 세워서 휴식을 갖는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사람에게는 지금의 나처럼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이 계속해서 쉴 시간도 없이 계속 페달을 밝게 하는지,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페달을 밟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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